"조국 콩고민주공화국(민주콩고)처럼 한국도 정치ㆍ경제적 암흑기를 겪었더군요. 그랬던 한국이 이처럼 빠르게 발전한 이유를 공부해서 조국에서 가르치는 게 내 꿈입니다."
지난해 4월 신청 6년 만에 난민 지위를 인정 받고 다음달부터 성공회대 비정부기구(NGO) 대학원에 진학하는 토나 욤비(43ㆍ사진)씨의 삶은 파란만장 그 자체다.
망명 이전 욤비씨는 독재 정권의 장기 집권을 돕는 '엘리트 하수인'이었다.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1996년부터 6년 동안 국가 정보기관에서 반정부단체와 야당 의원들을 사찰하는 임무를 담당했다.
하지만 4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콩고내전 와중에 무고한 시민들을 마구잡이로 해치는 정부의 공포정치에 회의를 느낀 욤비씨는 반정부 민주화 세력을 돕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자신이 일하던 정보기관에 의해 두 차례 투옥돼 모진 고문을 받았다. 천신만고 끝에 정보부 옛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탈옥하고 한국행 방문 비자를 손에 넣었다.
2002년 혈혈단신으로 한국에 왔지만 또 다른 고통이 기다리고 있었다. 난민 신청은 계속 기각됐고, 비자 기한 만료로 불법체류자로 전락해 두 차례나 추방될 위기에 처했다. 난생 처음 경험하는 육체 노동도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욤비씨는 "사료 공장에서 일하던 시절 길을 가다 탈장으로 쓰러진 적이 있었다"며 "30분 넘게 울며 고통을 호소하는 데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더라"며 씁쓸해 했다.
지난해 민주콩고에 있던 아내와 세 자녀를 데려와 인천의 한 교회에서 제공하는 거처에서 생활하고 있는 그는 기아와 독재, 인종ㆍ종교분쟁 등 아프리카가 당면한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난민단체 설립을 계획하고 있다.
최근 일고 있는 국정원 역할 확대 논란에 대해 "정보기관은 국민의 자유를 확대해야지, 행여 국민을 억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 욤비씨는 "한국도 국제 사회의 지원에 힘입어 현재 위치에 이른 만큼, 이젠 힘든 나라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