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수환 추기경의 육신은 이 땅을 떠나지만, 그의 가르침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남을 것이다. 2004년 출간된 고인의 회고록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 는 그의 생생하고 소탈한 육성을 담고 있어 오래도록 고인이 이 땅에 전해준 온기를 느끼게 한다. 추기경>
인간 김수환
김 추기경은 어린 시절 말썽꾸러기 소년이었다. 일본 아이들과 싸움을 하다 돌에 맞아 흉터가 생기기도 했고, 기도를 하는 어머니 등 뒤에서 잠드는 게 "특기"였다. 성직자로서 첫걸음을 뗀 것도 "가출을 통해서"였다. 경북 군위에서 보통학교 5학년을 마칠 무렵 15전을 들고 무작정 대구까지 130리 길을 걸어간 것이다.
어머니는 그 길로 아들을 대구 성유스티노 신학교 예비학교에 입학시켰는데, 김 추기경은 "입학 시험 성적이 형편없어 5학년을 다시 다녔으니 낙제를 한 셈"이었다고 털어놨다. 서울 동성상업학교 진학 후에는 사제직에 확신을 갖지 못해 꾀병을 앓기도 했다.
김 추기경의 어릴 적 꿈은 장사꾼이 되는 것이었다. "읍내 상점에서 5~6년쯤 장사를 배워 독립한 후 25살이 되면 장가를 가겠다"는 계획이었다. 회고록에는 신부가 되기 전 인연을 맺을 뻔했던 여자 이야기도 나온다. 첫 번째는 일본 유학 시절 친구로부터 누이동생과의 결혼을 권유받은 일인데, 김 추기경은 "훗날 그 누이동생과 만난 적이 있는데 참 예쁘기는 예뻤다"고 썼다.
두 번째는 부산에서 만난 한 여성이 청혼을 해온 일이었다. 1년 가까이 고민을 했다는 김 추기경의 결론은 "나에게 모든 걸 거는 한 사람을 평생 행복하게 해줄 자신이 없었다. 차라리 신부가 돼서 부족하나마 여러 사람에게 고루 사랑을 쏟는 일이 쉬울 것 같았다"는 것이었다.
격동기의 김수환
김 추기경의 서울대교구장 재임(1968~1998) 시절은 한국 현대사의 격동기 그 자체다. "재임 30년간 여섯 분의 대통령을 만났다"는 김 추기경은 "어떤 대통령과는 팽팽한 긴장 속에서 담판을 짓고, 또 어떤 대통령과는 그럭저럭 원만했지만, 청와대에서 만나자는 전갈이 오면 '제발 그만 불렀으면' 하는 마음부터 들게 한 이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가장 뜻깊었던 것은 1974년 지학순 주교가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금됐을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만남이었다고 한다. 박 전 대통령은 "종교가 정치ㆍ경제 문제에 개입하는 것은 고유 영역을 벗어나는 일"이라고 말했다. 김 추기경은 "사회가 부정부패로 썩어가는데도 교회가 수수방관하는 것은 직무유기"라고 대답하고 사건 연루자들의 석방과 감형 조치를 요청했다. 이로 인해 지 주교가 풀려났을 뿐 아니라 유인태, 이철, 이강철씨 등이 사형을 면했다.
그는 자신의 정치 참여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70, 80년대 격동기를 헤쳐나오는 동안 진보니 좌경이니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정치적 의도나 목적을 두고 한 일은 더더욱 없다.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 편에 서서 그들의 존엄성을 지켜주려고 했을 따름이다." 그는 "87년 6월항쟁 때 명동성당 공권력 투입이라는 일촉즉발의 위기도 그런 믿음 하나로 막았다"고 덧붙였다.
보디가드 김수환
김 추기경은 본의 아니게 '보디가드'라는 별명을 얻은 적이 있다. 1970년 교황 바오로6세가 필리핀 마닐라 공항에서 괴한의 공격을 받았을 때 본능적으로 방어 자세를 취했는데, 누군가의 피가 그의 옷소매에 묻은 것이 와전돼 '김수환 추기경이 가라데 무술로 괴한을 막아냈다'는 보도가 외신을 탄 것. 그는 "정부 인사로부터 '추기경 덕분에 코리아가 많이 알려졌다. 정말 다쳐서 입원까지 했다면 홍보 효과가 대단했을 것'이라는 인사를 들었다"고 당시의 해프닝을 돌이켰다.
1981년 테레사 수녀의 방한 때도 테레사 수녀를 감싸안고 인파를 헤쳐나가는 그의 모습에 '살아있는 성녀의 보디가드 김 추기경'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그는 "물밀듯 밀려드는 환영객을 막지 않으면 수녀님이 다치실 것 같아 보디가드로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면서 "사람들이 나를 꽤나 부러워했을 것"이라고 썼다.
김 추기경에게는 "몇십년간 따라다닌 할머니 스토커가 있었다"고 한다. 김 추기경이 눈길도 안 주자 이 할머니는 "얼굴도 못생긴 게 아는 척도 안 한다"고 불평을 했는데, 여기에 대한 김 추기경의 반응이 재미있다. "'못생겼다고? 옳거니, 잘됐다'고 쾌재를 불렀다. 그런데 자꾸 보니까 내가 잘생겼는지 이 할머니는 주교관에 출근하다시피 했다."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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