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뀌고, 달이 지나도 경제위기를 벗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TV, 라디오, 신문, 인터넷을 24시간 뒤져도 어떤 조짐도 없다. '행여, 오바마가...' 구세주인가 하여 세계의 눈과 귀가 워싱턴으로 향해도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우리 귀를 자극하는 소리가 있었다. 어디서부턴가 들릴 듯 말 듯 작은 소리가 울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딸라~앙... , 딸랑...'아주 미세하게, 쇠붙이가 흔들리는 소리였다. '워낭소리...'그 소리의 정체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기 시작했다. 언론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워낭소리'라는 생경한 단어에 고개를 갸우뚱하며 급히 사전을 뒤졌다. '황소 목에 달린 방울소리.'너무도 익숙하게 우리 곁에서 들었던 그 소리.
사람들은 허탈한 표정으로 다시 귀를 기울였다. 살기 어렵다고,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비명을 지르던 사람들이 '하찮은 소 방울 소리'를 듣기 위해, 혹시 그곳에서 희망의 소리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달려갔다. 도착한 곳은 작은 '예술영화관'이었다. 그 곳에서 너무도 작은 '한편의 독립영화'가 사고를 치고 있었다.
황금이 쏟아지는 이야기도, 연쇄살인 이야기도, 북쪽 이야기도, 스타의 스캔들도, 어떤 코미디도 아니었다. 자본 논리에 밀린 한 영화감독이 삶에 지쳐 한숨만 내쉬고 있다가 자신의 아버지를 생각하며 '소와 노인의 삶'을 그려 낸 다큐멘터리 영화였다.
<영화-워낭소리> 우리는 이 한편의 독립영화가 일으키고 있는 사회적 현상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독립' 영화다. 이충렬 감독은 철저한 '독립정신'으로 영화에 임하였다. 기존의 자본이 지배하는 주제와 체제를 철저히 거부하였다. 그는 용기 있게 위기에 처해 있는 사회가 갈 길을 향해 스스로 걸어 들어갔다. 그의 주머니는 비어 있었다. 생각과 카메라뿐이었다. 그는 '무'를 '유'로 만들겠다고 덤볐다. 영화-워낭소리>
작가에게 빈 원고지, 작곡가에게 빈 오선지, 화가에게 빈 스케치북이면 작품이 태어나듯이 영화감독은 카메라만 있으면 되었다. 촬영할 필름을 구입할 돈이 없었다. 필름이 필요 없는 디지털 카메라로 찍었다. 수많은 부서의 스탭도, 이름 있고 경력 있는 배우도 없었다. 오직 두뇌와 노력만 있었다.
자본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황금알을 낳고자 한다. 인류와 사회, 자연이 어찌 되든 상관하지 않는다. 그들 스스로가 만들어 놓은 체제는 도전하는 자를 거부한다. 그러나 이충렬 감독은 그들에게 겁 없이 맞붙었고, 승리했다. 그는 <워낭소리> 를 위하여 모든 것을 바치고 기도하였다. 자연도 그를 도왔다. 주인공 '황소'도 그를 도왔다. 주인공 '할머니, 할아버지'도 도왔다. 어느 미술 감독도, 어느 명배우도 그들을 능가할 수 없었다. 워낭소리>
자연은 감독이 원하는 대로 빛을 주었고 어둠을 주었다. 비도, 눈도, 바람도 주었다. 주인공들은 웃음을 원하면 웃었고, 슬픔을 원하면 눈물을 흘렸다. 하늘이 보기에 그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 하늘이 그를 도왔다. 주류 영화시장 밖, 7개의 예술영화관에서 상영을 시작한 영화에 불이 붙었다. 경제위기 먹구름이 언제나 벗겨질까 하늘만 바라보고 있던 사람들 귓가에 '딸라~앙... 딸라~앙...'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워낭소리> 는 농촌의 한 할아버지와 그를 닮은 늙은 황소의 온정을 그렸다고 화제가 되어 자식들이 부모를 위해 영화티켓을 구매하기 시작하였다. 집 밖 나가기조차 두려워하던 노인들이 <워낭소리> 를 보며 살아온 인생을 반추했다. 부모를 모시고 온 청년들도 입을 열기 시작했다. 워낭소리> 워낭소리>
'이 영화는 노인과 황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이야기이다.' 소문은 빠르게 바람을 탔다. 자연 앞에 선 인간의 모습은 너무나 초라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삶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80년을 자연 속에서 산 그들은 자연과 닮아가고 있었다. 할아버지와 황소가 걸을 때 우리는 그 다리가 누구의 것인지 구분 할 수 없었다. 논을 가는 그들의 모습을 누군지 구분 할 수 없었다. 굵게 파인 주름은 누구의 것인지 구분 할 수 없었다.
할아버지와 황소는 하나였다. 서로는 서로를 위하여 모든 것을 바쳤다. 계절이 바뀌고 세상이 바뀌어도 할아버지와 황소는 같았다. 할머니가 아무리 꿍꿍거려도 소용이 없었다. 할아버지는 황소를 위하여 황소보다 더 힘들게 살았다. 황소를 위해 농약도 사용하지 않았다. 황소의 자존심을 위해 팔지도 않았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황소의 생활은 우리의 정체성을 찾고 현재 우리가 처해 있는 경제위기를 극복해 나갈 혜안을 제시하고 있었다. 할아버지와 황소는 비바람이 몰아치고, 집이 무너져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그들을 대신해 주리라고 생각하지?않았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황소는 그의 소임을 다 했다. 할머니 역시 힘들게 일하는 할아버지와 황소가 늘 불만이지만 그들이 죽으면 혼자서 살 수 없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황소가 죽는 날. 할아버지가 코뚜레를 풀자 황소가 곧 고개를 떨궜다. 뜬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앙상해진 몸을 이끌고 살아간 황소와 그와 친구가 되어 평생을 산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들은 새로 길들인 소를 끌고 다시 밭일을 나간다. 80의 할아버지는 아파서 신음을 한다. '워낭소리'가 들리면 시름시름 아파 누워 감겼던 눈이 번쩍 떠진다.
나는 <워낭소리> 를 보며 우리가 왜 위기에 처하였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감독은 영화 속에서 할아버지와 황소의 어깨 저 너머로 비를 피해 건물 안으로 들어가 한국소를 지키자며 구호를 외쳐대는 미친 소 수입반대 시위대와 땀 흘려 일해 공부시킨 자식들이 추석이라고 찾아와 황소 곁에서 고기를 구워먹는 모습을 대비시켰다. 워낭소리>
<워낭소리> 를 보며 우리의 경제위기와 영화계 위기는 우리가 자초한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이 든 것은 나만 일까. 감독은 잊지 않고 우리에게 혜안을 주었다. 할아버지와 황소, 그리고 투덜대는 할머니의 삶만으로도 이 세상 어떤 일이라도 해 낼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워낭소리>
한국의 미래와 영화계의 미래는 밝다. <워낭소리> 의 주관객은 상업영화의 주관객인 20대가 주축이었다. 극장 안은 온통 젊은이들이다. 그들은 <워낭소리> 에서 삶과 죽음이 그 자체로 존귀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도 어슴푸레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워낭소리> 워낭소리>
온통 자본 메커니즘의 노예가 되어 블록버스터로 '한방'을 노리던 영화계는 '독립정신'으로 재무장할 수 있는 절호의 계기를 만나게 됐는지 모른다. <영화-워낭소리> 의 '한방'으로 움츠린 우리 어깨가 활짝 펼 수 있게 되기를 두 손 모아 바란다. 영화-워낭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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