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은 우리 시대의 상징이었다. 그는 한국 카톨릭계의 큰 어른으로서 양심을 지켰고, 사랑을 실천했고, 국민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았다. 검소했고, 겸손했으며, 자신의 산문집 제목처럼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일생을 바쳤다.
그와 그의 교회는 세상을 향해 나아갔다. 1968년 서울대교구장 되자 그는 "교회의 높은 담을 헐고 사회 속에 교회를 심어야 한다" 며 세상 속으로 몸소 걸어 나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손을 잡았다. 암울한 독재정권의 모순과 횡포를 비판하고 사회정의와 인권 회복을 부르짖었다.
시대의 아픔과 모순을 외면하지 않는 그의 삶은 1969년 한국인 최초로 추기경이 된 이후에도 계속됐다. 스스로 무소유의 삶을 살았기에 국민은 그의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였다. 시대가 어지럽고, 사회가 아플 때마다 그를 찾았고, 그에게서 용기와 사랑을 배우고 희망과 위안을 얻었다.
그는 순수했다. 이념도 정치도 그가 지키려는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에 대한 존엄성보다 앞설 수는 없었다. 그래서 압박과 고통 속에서도 유신정권과 군사독재에 맞섰고, 명동성당을 민주화 운동의 마지막 보루로 만들었다. 그것만이 하느님의 사랑을 세상에 실천하는 길이라 확신했다. 일부의 오해와 편견을 무릅쓰고 얼마 전까지도 정치 현실과 국민의 자세에 대한 견해를 밝힌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는 소박했다. 한국 최고의 성직자이면서도 늘 스스로 부족한 죄인이라고 생각했다. "70평생 그렇게 예수를 만나고 싶었지만 못 만났다"고 고백했고, "입으로 이웃 사랑을 강조하면서도 스스로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지 못함으로써 생각과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지 못했다"고 자책했다. 지난해부터 건강이 나빠져 병원에 입원해서도 단 한번도 자신을 위해 기도하지 않았으며, 생명연장 장치를 거부하고 자신의 삶을 하느님에게 맡기는 초연한 자세를 보였다.
그가 어제 교구 관계자들에게 "고맙다"는 마지막 한마디를 남기고 87세의 나이로 선종(善終)했다. 인고와 격동의 현대사 속에서 생명을 다하는 날까지 '나' 보다는 이웃과 사회, 나아가 북한동포의 상처와 아픔까지 어루만지고 위로하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데 70년이 걸렸다"고 말한 아름다운 사람 김수환 추기경.
우리 국민 모두와 대한민국은 이 시대 큰 별을 잃었다. 그러나 그가 이룩한 이 땅의 평화와 민주화, 한국 가톨릭의 발전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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