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3·1운동 90주년 '그날의 함성' 세계사적으로 의미있었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3·1운동 90주년 '그날의 함성' 세계사적으로 의미있었다

입력
2009.02.19 07:07
0 0

올해는 3ㆍ1운동 90주년이 되는 해다. 3ㆍ1운동의 의미를 세계사적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움직임이 어느때보다 활발하다. '기미(己未)년에 일어난 범민족 항일운동'이라는 기존 인식 틀을 벗어나, 20세기 초 근대 정치ㆍ문화ㆍ사상의 세계적 흐름에 3ㆍ1운동을 비춰보자는 움직임이다.

성균관대에서는 13, 14일 '1919년: 동아시아 근대의 새로운 전개'라는 국제 학술대회가 열렸다. 이 학술대회에서는 '민족 해방'을 넘어 근대의 다양한 주체들의 '자기 해방'이라는 관점에서 3ㆍ1운동에 접근하는 방법론이 제기됐다.

에레즈 마넬라 하버드대 교수는 1919년 봄을 '동아시아의 윌슨주의 시기'로 규정했다. 그는 이집트, 인도, 중국 등에서 대규모 반식민주의 봉기가 동시다발로 일어난 것을 윌슨의 민족자결 원칙의 파급력과 연계해 설명했다. 마넬라 교수는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은 약소국의 자유와 평등, 국제 정의 등을 제시하는 연합국 지도자들의 비전을 유례 없는 기회로 받아들였다"고 분석했다.

그는 당시 서울 주재 영국 총영사관의 보고서에 "3ㆍ1운동 당시 '윌슨이 조선 독립을 지원하러 올 것이고, 미국 군함이 이미 인천에 상륙했다'는 소문이 무성하게 퍼졌다"는 기록을 근거로 들었다.

미야자마 히로시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교수는 문명주의의 관점으로 3ㆍ1운동을 들여다봤다. 그는 "한국에는 민족주의에 앞서 문명주의가 존재했으며, 3ㆍ1운동도 문명주의의 색채를 강하게 띠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민족, 언어 등의 개별성을 초월하는 보편적 이념 실현을 목표로 하는 문명주의는 민족주의와 모순될 수밖에 없는데, 3ㆍ1운동은 그 모순을 넘어선 특수한 운동이라는 것이다. 미야자와 교수가 지목하는 한국의 문명주의의 뿌리는 성리학적 전통이다. 그는 세계 평화를 거스르는 일본에 대해 '사로(邪路)로부터 벗어날' 것을 호소하는 독립선언서에서 그런 특징을 읽어냈다.

권보드래 동국대 교수는 19세기 약육강식의 사회진화론 관점에서 탈피했던 조선 지식인들의 인식 전환에 주목했다. 그는 "약자는 생존을 요구할 권리가 없다는 사상이 19세기에 횡행했으나, 1910년대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인류'와 '세계'라는 보편주의를 발견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권 교수는 '신천지가 안전(眼前)에 전개'되고 있다고 표현한 독립선언서의 관점이 이를 뒷받침한다고 설명했다. 또 1910년대 계속됐던 민중봉기의 흐름에 무게를 두면서, 3ㆍ1운동이 "부르주아지의 것으로만 한정할 수 없는 넓은 의미를 지닌다"고 평가했다.

동북아역사재단도 3월 9일 3ㆍ1운동 90주년을 기념하는 국제 학술대회를 연다. 전체 주제는 '3ㆍ1운동과 1919년의 세계사적 의의'로, 민족주의 테두리를 벗어난 3ㆍ1운동의 세계사적 의미 탐색이 목적이다. 겅위쯔(耿雲志) 중국 사회과학원 연구원이 중국 5ㆍ4운동의 의미와 3ㆍ1운동을 비교 분석한다. 마쓰오 다카요시 일본 교토대 교수는 '일본의 1919년과 다이쇼(大正) 데모크라시'라는 주제 발표를 할 예정이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