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러시아와 갈등을 빚어온 동유럽의 미사일방어(MD) 계획을 재검토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란 핵 문제 해결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러시아의 협조를 얻어내는 한편 조지 W 부시 정부 때 냉각됐던 양국관계도 회복해 보려는 의지로 읽힌다.
러시아를 방문 중인 윌리엄 번스 미 국무차관은 13일 인테르팍스 통신과 인터뷰에서 “이란 핵미사일 위협과 관련해 MD가 효율적으로 작동할지 검토하겠다. 미국과 러시아는 MD계획의 파트너”라고 밝혀 러시아와 긴밀히 협력할 뜻을 내비쳤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도 11일 레이더 기지가 설치될 체코 외무장관과 회담을 가진 뒤 “이란이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면 미국은 MD 시스템의 동유럽 배치를 재고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도 7일 뮌헨에서 열린 국제안보회의에서 “미국과 러시아 양국은 관계개선을 위해 ‘리셋 버튼’을 함께 누를 때”라며 러시아에 화해의 손짓을 보였다.
오바마 정부 핵심 인사들의 잇따른 MD 계획 재검토 발언에 대해 미 정부 고위관리는 14일 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 “MD 계획의 핵심은 이란의 위협이라며 이를 해결할 수 있다면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러시아는 그 동안 미국이 폴란드와 체코에 미사일 기지와 레이더 기지를 설치하겠다는 MD 계획이 자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일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이 달 초 “미국이 MD 체제를 구축하지 않으면 러시아도 국외영토 칼리닌그라드에 미사일을 배치할 생각이 없다”고 밝히며 미 정부의 태도 변화를 촉구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14일 MD 계획에 대한 미 정부의 입장 변화 조짐에 대해 환영했다. 라브로프 장관은 독일 시사 주간지 슈피겔과 인터뷰에서 “러시아는 MD 계획을 재검토하고 이란에 대해 유연한 신호를 보낸 미 정부의 정책을 적극 환영한다”며 “양국이 협상 테이블에 앉아 MD 계획에 대해 재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러시아는 14일 자국 영공을 통한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군수물자 수송을 허용하겠다며 화해 메시지를 보내는 등 미국에 MD 시스템 구축계획을 수정할 것을 우회적으로 요구하기도 했다. 양국 정상은 4월 런던에서 열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협의할 가능성이 높다고 외신들은 전망했다.
그러나 부시 정부 시절 미국과 급속도로 가까워진 반면 러시아와 적대관계를 형성해온 동유럽 국가들은 불편한 기색을 보이고 있다. 리투아니아 국방장관은 11일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을 만나 MD 기지 배치에 대해 확실한 보장을 받고 싶다”고 AP통신에 말했다.
강철원 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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