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취해 길에서 잠든 청년을 보았다. 다음날 영하로 떨어진다는 일기예보를 듣고도 모른 척할 수 없었다. 흔들고 소리도 쳤지만 좀처럼 일어날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약이 오른 동행이 소리쳤다. "야, 일어나!" 그 한 마디에 흔들흔들 일어선 청년이 게슴츠레 눈을 뜨고 대들었다. "몇 살인데 반말이쇼?" 가장 질색하는 게 반말이었던 모양이다.
비교적 얌전한 남편이 크게 분노하는 것을 두 번 보았다. 집에서 기르는 개가 주인도 못 알아보고 짖는대서 한 번, 길을 찾느라 잠깐 정차했는데 공사장의 관리인이 손짓으로 비키라고 했대서 두 번.
"내가 개야, 뭐야?"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는데 그러고보니 그의 취약점은 '개'인가? 친구 A는 "저의가 뭐냐?"라고 묻는 사람과 실랑이를 벌였다. '저의'란 말에 이미 나쁜 의도란 뜻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C는 B와 절교했다. 비오는 날 흰 스타킹을 신고 간 C를 데리고 B가 윈도우 쇼핑을 다녔기 때문이었다. 흰 스타킹에 점점이 튀기는 흙탕물을 참을 수 없고 B의 배려 없음은 더 참을 수 없었다고 했다.
내 경우는 운전이다. 운전대만 잡으면 예민해진다. 낄 때가 아닌데 끼어들고 핸드폰 통화하며 운전하고, 도무지 참을 수가 없다. 어느 날 화가 나서 한참 욕을 하다 룸미러를 보았는데 뒷좌석에 시부모님이 앉아 계셨다.
하성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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