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술로 만든 로봇이 세계 최초로 무대 공연에 배우로 데뷔했다.
국립국악관현악단(예술감독 황병기)은 18일 오후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사람의 형체를 본뜬 안드로이드 로봇 '에버(EveR) 3'가 출연하는 작품 '에버가 기가 막혀'의 시연회를 가졌다. 에버는 판소리를 배우는 학생으로 출연, 고운 한복 차림으로 말하고 노래하고 춤도 추며 좋은 연기를 펼쳐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안드로이드 로봇이 공연에 연기자로 출연하기는 에버3가 세계 최초다.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이 개발한 '와카마루'가 로봇으로는 세계 최초로 지난해 연극에 출연했으나 사람의 모습을 한 로봇은 아니었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이 개발한 에버3는 키 157cm, 몸무게 50㎏에 실리콘 피부와 62개의 관절을 가진 20대 미녀 로봇. 이 연구원이 2006년 발표한 국내 최초의 안드로이드 로봇 '에버 1'과 가수 로봇 '에버 2'의 후속 모델로, 희로애락을 나타내는 다양한 표정과 자연스런 몸짓에 감성 표현이 뛰어나다. 아직 걷지는 못하지만 2개 국어를 인식하고 입술을 움직여 말도 할 줄 안다. 현재 개발 완성 단계로 최종 점검 중이다.
에버3의 데뷔작 '에버가 기가 막혀'는 우주 여행을 떠난 연주자의 가야금 선율에 매혹된 로봇 에버가 지구로 찾아와 판소리를 배우면서 인간과 교감한다는 내용. 극중 에버는 판소리 '춘향가' 중 '사랑가', 민요 '진도 아리랑', '흥보가' 중 '박타는 대목'을 배우고 판소리 랩 '흥보가 기가 막혀'도 불렀다.
소리를 하도 못해서 ?겨날 뻔한 에버가 "학상(학생)더러 나가라고 하면 어디로 가란 말이요, 이 엄동설한에" 하고 '흥부가 기가 막혀'를 개사해서 부르자 객석에선 폭소가 터졌다. 큰 박수를 받고 신이 난 에버는 앙코르로 '사랑가'를 하면서 관객들에게 추임새 넣는 법도 가르쳐줬다.
극중 소리선생은 명창 왕기석(국립창극단원)씨가 맡았고, 에버의 친구로 휴머노이드 로봇(사람 모습은 아니지만 팔, 다리를 가진 로봇) 세로키도 익살맞은 참견꾼으로 함께 출연했다. 에버의 소리와 몸짓은 국립창극단원 박예리씨의 사전 녹음과 모션 캡처로 만들었다.
시연회를 제작한 황병기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은 "이 무대를 계기로 과학과 예술의 만남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이라며 "우선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어린이 프로그램인 '엄마와 함께 하는 국악 보따리'의 5월 공연에 에버를 정식으로 출연시키겠다"고 밝혔다.
왕기석씨는 "사람이 아닌 로봇과 함께하는 공연이라 호흡을 맞추는 게 어려웠지만, 세계 최초로 로봇에게 소리를 가르치게 돼 영광"이라고 말했다. 에버의 옷을 지은 한복디자이너 이영희씨는 "에버가 한복을 입고 우리 소리를 하면, 한복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반겼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은 에버3를 4월 독일에서 열리는 '하노버 메세'에 소개할 예정이다. 70여개 국이 참가하는 세계 최대의 산업기술 박람회로, 한국은 동반국가 자격으로 참가한다.
오미환 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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