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제목이 다소 생뚱 맞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의 과학문화재 중에서도 으뜸갈만한 자랑거리로서, 특유의 비색(翡色)과 독창적인 상감기법 등을 뽐내던 고려청자가 이후 쇠퇴하여 결국 맥이 끊겨버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도공과 기술자들의 낮은 사회적 지위라든가, 몽골의 침략과 같은 정치적, 경제적 배경 등이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듯한데, 기술의 전수 방식이라는 측면에서도 살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관련 기술을 아버지가 자식에게도 잘 알려주지 않았다고 할 정도로 기밀유지와 보안에 너무도 철저했던 것이 도리어 발목을 잡아, 기술의 교류와 확산을 통한 발전의 기회를 상실한 채 몰락하고 말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남들보다 우위에 있는 기술이나 노하우 등을 잘 지키는 것은 물론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상호 교류와 확산 등을 게을리 하면 더 이상 발전을 하지 못하고 도태되고 마는 것이 또한 과학기술의 기본 특징이다. 기술에 내재한 이러한 '이중적 속성'을 다들 똑바로 인식하지 못한다면, 미래 지식산업사회에서 낙오될 우려가 매우 크다. 더구나 각종 첨단기술과 신제품이 다투어 쏟아져 나오는 무한 기술경쟁시대에, 남들보다 항상 우위를 점하는 절대적 강자 기술이란 존재할 수조차 없다.
요즘도 가끔씩 언론에 특정 기술유출 사건으로 인한 '피해 예상' 금액이 수십 조 원에 달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온다. 유형화된 기술도면이나 설계도, 소프트웨어 등을 빼돌리는 행위는 기술절도 범죄로서 지탄 받아 마땅하고 철저히 방지해야 할 것이나, 정당한 기술적, 인적 교류나 전직마저 기술유출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범죄시 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다.
합법적인 기술교류의 경우이건, 불법적인 기술절취의 경우이건, 피해액을 멋대로 뻥튀기하는 행태에 대해 일일이 지적하기도 이제는 지겹지만, 과연 기술유출로 수십 조 원의 피해가 가능할지 한 번 더 곰곰이 생각해보기로 한다. 먼저 제 아무리 최첨단기술일지라도 모두 다 실용화가 가능한 것은 아니다. 연구실의 개발 성과가 상품화의 성공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숱한 고비와 리스크를 뛰어넘어야 하는데, 선진국의 초일류기업이라 할지라도 상품화 성공률은 10%를 넘지 못한다는 통계도 있다.
설령 힘들게 상품화에 성공했다 해도 그 기술이 시장 지배자가 될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그 무렵에는 이미 다른 여러 기술방식 및 타사의 제품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만 할 것이다. 또한 시장 지배적 기술이 되었다 할지라도 대부분 특허 등록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것이지, 기술자 몇 명이 빼돌린 도면 등으로 거액의 손해가 발생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
종합해보자면 기술유출 피해액 수십 조 원 운운하는 것은, 이솝 우화에 나오는 "달걀을 사서 병아리로 부화시키고, 다시 닭이 알을 낳고 부화하기를 반복해서... 금방 큰 부자가 된다."는 얘기만큼이나 황당하고 근거가 없는 것이다.
산업자원부, 지금의 지식경제부 차관을 지낸 모 회사 대표께서 언젠가 "기술이 뭔지도 모르면서 재임 중 기술유출방지법을 만들었다."고 솔직히 고백한 적이 있는데, 이 나라의 정치인, 관료, 언론인, 그 밖의 오피니언 리더 분들은 제발 기술이 무엇인지 똑똑히 아셨으면 한다.
최성우 한국과학기술인연합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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