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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청소년문학상 1월 장원/ 손전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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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청소년문학상 1월 장원/ 손전등

입력
2009.02.19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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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규(필명 레이피어)

한국일보사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전국국어교사모임이 공동 주최하는 '문장청소년문학상' 1월 시 장원에 박민규(민족사관고)군의 '손전등'이 뽑혔다.

이야기글 부문에서는 박운선(부산 반여고)양의 '가해자', 비평ㆍ감상글에서는 김건우(성동공고)군의 '일제고사, 누구를 위함인가', 생활글에서는 최민정(동명여고)양의 '자랑스러운 꼴찌'가 각각 장원으로 선정됐다. 당선작은 '문장' 홈페이지(www.teen.munjang.or.kr)에서 볼 수 있다.

옷차림은 노랗지만 속은 까만 별들이

거무스름한 한숨을 내쉬는 골목에

낡은 손전등 하나, 쓰레기 더미를 비춘다.

손전등이 꺼지면 고요해지는 골목.

쓰레기 하나 없는 깨끗한 골목인 양

얌체처럼 말 한마디 없이 다소곳하다.

수명이 거의 다한 손전등은

제 한 몸 태워

쓰레기 더미를 비추고 있다.

가까이 가면 갈수록 커지는 쓰레기 더미들.

한 귀퉁이에는 어린 아이의 울음이 고이 담긴 이혼합의서가 있고

다른 모서리에는

삶에 지친 어느 방랑자의 가래와 토악질과 핏방울과 술냄새가 섞여

김만 모락모락 나고 있다

손전등의 건전지를 갈아끼우면

더 많은 추악한 쓰레기들이

거리를 차곡차곡 메운 형상이 드러나겠지.

끊어질듯한 필라멘트로

힘겹게 밤길의 쓰레기를 비추는 손전등이 있다.

지난 세월의 슬러지들이 쌓인

검정 그림자를 홀로 파헤치고 있다.

그러나 태양이 이따금 떠오른 날에도

쓰레기들은 누구의 손길도 받지 않은 채

또 이따금 어둠이 잦아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손전등만이 고양이처럼 밤길을 울부짖다가

해가 뜨면 지쳐 잠이 든다.

■ 심사평

'손전등'은 안정된 시적 구도와 차분한 시상 전개가 읽는 묘미를 더해주는 시입니다. 세련된 언어표현보다 섬세한 관찰에서 얻어지는 시적 표현들이 생생하게 다가왔습니다.

가령 쓰레기더미를 비춘 손전등의 시선에 잡힌 '한 귀퉁이에는 어린 아이의 울음이 고이 담긴 이혼합의서가 있고' 같은 표현은 감동을 줍니다. 마무리의 지나친 안정감이 오히려 시의 긴장을 떨어뜨리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정서적인 울림을 주는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경주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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