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 동맹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오래 전부터 이야기해왔다. 하지만 동맹은 한쪽이 한쪽을 따르는 종속관계여서는 안 된다. 대등한 파트너십이 있고 나서야 동맹이 있는 것이다.”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일본 민주당 대표가 17일 밤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과 회담 도중 한 발언이 미묘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올해 총선에서 집권 가능성이 점쳐지는 민주당이 기존 자민당과 다른 미일 관계를 구축하겠다는 뜻을 미국 측에 직접 전달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자와 대표는 이날 회담 내용을 설명하는 기자회견에서 동맹은 “서로 주장을 교환해서 토론해 더 좋은 결론을 얻고 그래서 나온 결론을 굳게 지켜나가는 관계여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는 주일미군 재편에 대해서도 “우선 양국이 동맹국으로서 세계 전략을 제대로 의논해 합의를 얻어낸 뒤 개별 대응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느냐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오자와 대표는 “지금까지 일본 정부는 자기 주장을 제대로 제시할 수 없었고 일본인이 예를 들어 곤란한 역할이라도 서로 분담하는 책임을 질 각오가 없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이야기를 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핵 카드를 내놓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도 전했다”고 덧붙였다.
일본과 미국은 내년에 미일안보조약 개정 50주년을 맞지만 지금까지 집권 자민당과 미국 정부의 결속은 대등한 ‘동반자’라기보다 ‘주종’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민주당은 오래 전부터 이런 관계를 바꾸는 ‘진정한 미일 동맹 확립’을 당론으로 삼았다.
오자와 대표는 2006년 취임 이후 미국 주도의 ‘테러와의 전쟁’에 동참한다는 명분으로 일본 정부가 인도양 급유를 지원하고 이라크에 자위대를 파견하는 데 반대해왔다. 이전 문제로 미일 정부와 오키나와 주민간에 갈등을 빚고 있는 주일미군 후텐마(普天間)비행장은 전략환경의 변화를 고려해 장기적으로 국외로 가야 한다는 게 민주당의 기본 정책이다.
주일미군지위협정도 재검토하고, 미군 관련 예산도 검증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 오자와 대표는 전날 라디오에 출연해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미군 증원을 비판했다.
미국 국무장관이 방일 중 민주당 대표를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회담 자체도 미국이 먼저 제의했다. 민주당은 오자와 대표와 스케줄이 맞지 않는다고 한번 거절했다가 그래도 만나는 게 낫겠다고 밤 시간으로 조정했다는 후문이다.
오자와 대표는 회담 서두에서 “최근의 내 언행에 대해 미국의 지인에게서 미국 내에 오해가 있다는 충고를 받았다”고 말했다. 일본의 정권 교체 가능성에 미국이 상당히 무게를 두고 있는 한편에서 민주당 집권 후 바뀔 미일 관계를 우려하는 분위기가 벌써 감지된다.
도쿄=김범수 특파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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