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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집행관 일기' 그들의 눈물에 빨간딱지… "내 슬픈 밥벌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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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집행관 일기' 그들의 눈물에 빨간딱지… "내 슬픈 밥벌이여"

입력
2009.02.19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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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섭 지음/오푸스 발행ㆍ272쪽ㆍ1만2,000원

애지중지 아껴온 세간에 빨간 딱지를 붙이고, 하나뿐인 밥벌이 수단을 빼앗는 일을 하는 사람들. 그들을 집행관이라 부른다. 식구들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고이고, 수십년 쌓은 정이 단돈 몇십만원에 날아가는 고통 속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이다. 이 책은 누구도 마주치고 싶어하지 않는 그 집행관의 목소리로 그린 세상 풍경이다.

저자는 32년간 검찰 수사관으로 일하다 2005년 집행관 생활을 시작했다. 두 전직 대통령의 구속 집행을 담당하고, 내로라하는 정치인들을 '모셔 갔던' 이력을 지녔다. 자연스레 차가운 캐릭터가 연상된다. 그러나 이 '똥배 집행관 아저씨'의 눈길은 더할 나위 없이 따스하다. 집행을 나가 "라면 국물을 뒤집어쓰고 쇠파이프를 막아내며" 그려낸 풍경화가, 목탄화의 푸근한 느낌을 준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오늘 저는 한 임대아파트 명도 집행에 앞서 답사를 나갔습니다. 한 가족이 살기에는 빠듯한 13평이더군요… 문간방에 걸린 교복 한 벌에 시선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집행관인 제게는 서늘한 눈길조차 주지 않는 아주머니가 정성스레 빨고 다렸을 교복 한 벌이 가슴을 뜨겁게 만들더니 콧잔등이 시큰해졌습니다."(33쪽)

1998년 외환위기 이후에도 68만여 건에 머무르던 집행 건수는 2007년 이후 114만건을 넘어서고 있다. 이 숫자는, 이 땅 누군가의 눈물이고 절망이다. 3년여를 집행관으로 살아온 저자는 "너무 많은 눈물과 절망 앞에서 내 슬픈 밥벌이를 원망할 정도였다"고 고백한다. "이 살풍경의 한복판에서 언제나 주연은 돈이었고, 우리는 각자 인생의 조연에 불과했다"는 그의 말은 바로 2009년 한국의 슬픈 자화상이다.

이 따뜻한 집행관의 이야기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상처 입은 채로 뚝뚝 눈물 흘리며 살아가야 하는 것도 인생입니다. 그렇게 살아내다 어느 날 가슴에 패인 상처를 덤덤히 바라볼 수 있게 될 때야 비로소 진정한 위로도, 다시 일어서는 것도 가능합니다… 지금 어디선가 시린 아픔을 겪고 힘들어하는 분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기를 간절하게 빌어봅니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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