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학자 찰스 P 킨들버거는 명저 <광기, 패닉, 붕괴-금융위기의 역사> 에서 되풀이되는 금융위기를 '탐욕과 공포의 변주곡'으로 정형화했다. 그는 "탐욕과 공포의 시소게임에서 탐욕이 승리할 때 버블이 형성되고, 공포가 탐욕을 누를 때 시장은 위기를 맞는 과정이 반복된다"고 주장했다. 광기,>
광기로 치닫는 탐욕의 메커니즘은 이번 세계 금융위기를 촉발한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에서도 작동했다. 겁없이 은행빚을 끌어다 집을 샀던 개인들의 탐욕, 수익에 대한 탐욕으로 서브프라임 채권을 재탕 삼탕 가공해 끝없이 사고 판 금융사들, 명목 수익률에 눈이 멀어 관련 채권을 긁어모은 수많은 기관들. 이런 행위는 탐욕이기도 하고, 탐욕에 눈이 먼 '거대한 착각'이기도 했다.
탐욕과 착각이 이처럼 만연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재미 한인 뱅커인 최운화 LA 커먼웰스 비즈니스은행장은 <거대한 착각> (이콘 발행)에서 그 배경에는 1990년대 미국을 휩쓴 자유방임적인 시장주의와 거기 맞춘 금융규제 완화 조치가 있다고 지적한다. 거대한>
"탐욕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본성입니다. 탐욕 자체보다는 무분별한 탐욕을 방치하고 조장한 제도가 문제죠. 1999년 미국이 대공황 후 금융시스템에 대한 적절한 규제에 초점을 둔 글래스ㆍ스티걸법을 66년 만에 폐지하고, 금융사에 최대한의 영업자유를 부여한 그램ㆍ리치ㆍ블라일리(GLB)법으로 대체한 것은 비판 받아 마땅합니다."
최 행장에 따르면 GLB법은 보수적으로 운영돼야 하는 상업은행과 그렇지 않은 다른 금융사의 업무영역 구분을 없애고 무한경쟁시대를 열었다. 수익경쟁에 나선 월스트리트 금융사들은 모기지유동화채권(MBS), 부채담보부채권(CDO) 같은 서브프라임 부실채권과 파생상품을 광적으로 매매했다.
전혀 새로운 얘긴 아니지만, 앨런 그린스펀 전 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을 겨냥한 책임론도 흥미롭다. 최 행장은 "그린스펀 의장은 9ㆍ11 테러 후 연쇄 금리 인하를 통해 과잉 유동성을 만들면서도 버블 우려를 일축했다"며 "그는 자유시장 시스템에 대한 맹신, 또는 오만에 사로잡혀 GLB법 제정을 주도하는 실책까지 범했다"고 주장했다.
GLB법과 유사한 한국의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에 대해 그는 "시장경제 원리에 따른 시스템 개혁을 비판할 생각은 없다"며 "다만 시장경제 원리의 진정한 실천을 위해서는 미국의 실패를 거울 삼아 적절한 정부의 역할과 감독 원칙을 세워 실행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거대한 착각> 은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국내외에서 출간된 수많은 관련 서적 중에서도 사태의 개요와 세부를 가장 간명하게 정리하고 있다. 최 행장은 "보다 성숙한 시장경제에 도달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사태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책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거대한>
그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한국외환은행 출신이다. 1983년 외환은행 퇴직 후 도미해 20년 간 현지 금융 일선에서 일했다. 2005년 그가 설립한 커먼웰스 비즈니스은행은 LA 일대 한인 기업을 상대로 프라이빗 뱅킹 등의 업무를 하고 있는 자산 3억달러 규모의 금융사이다.
장인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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