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최초로 1896년 에디슨 원통형 음반(미 의회도서관 소장)에 노래를 남긴 미국 유학생 3명은 어떤 인물이고 어떤 행로를 걸었을까. 한민족 최초의 음원인 이 음반을 녹음한 3명 중 2명은 안정식(安禎植ㆍ당시 27세), 이희철(李喜轍ㆍ26세)이며 이들은 국비유학생으로 일본에 갔다가 다시 미국으로 건너갔음이 밝혀졌다(본보 2월 12일자 2면 보도).
그럼 나머지 1명은 누구일까.
학계의 연구논문과 저서 등에서 이들을 추적해 미 의회도서관 자료와 비교, 퍼즐을 맞추듯 두 사람의 신원을 확인한 이완범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Son. Rong'으로 영문 표기된 나머지 1명의 이름이 '송영택'일 것으로 추정한다. 송영택은 녹음자 3명이 다녔던 미국 하워드대학의 1898~9년 대학편람에 사범과 학생으로 기재된 안정식 등 6명 중의 한 명이다.
특히 안정식이 미국으로 가게 된 사연은 역사적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는 1895년 4월 7일 도쿄에 도착, 게이오대학에 들어간다. 그런데 반 년 만인 이듬해 2월 말 안정식은 동료 유학생 5명과 외부대신 김윤식에게 보내는 편지를 쓴 후 기숙사에서 도망친다, 그 중 한 명이 유학생 친목회비에서 빼낸 공금 423엔을 들고. 국비유학을 간 엘리트 청년들이 공금을 횡령해 집단 탈주를 하게 된 이유는 뭘까? 학자들은 이들 유학생을 파견했던 개화파 정권이 아관파천으로 몰락하자 신변에 불안을 느껴서 그랬을 거라고 추정한다.
이들이 미국에 도착하기까지의 곡절도 많았다. 당시 도쿄 재일공사가 워싱턴의 재미공사 서광범에게 보내는 서신을 지니고 도쿄에서 캐나다 범선에 오른 이들은 4월 11일 밴쿠버에 도착했다. 영어를 할 줄 모르고 교통비도 없어서 밴쿠버에 머물던 이들에게 서광범 공사는 여관비와 교통비를 대주며 워싱턴으로 오게 했고, 하워드대학 입학도 주선했다. 이희철은 안정식 일행보다 한 달 늦게 미국행 배를 탔다.
이들은 하워드대학에 입학한 첫 한국인으로 화제가 됐다. 워싱턴포스트는 1896년 5월 8일자에 '한국인 7명 하워드대학에-미국 교육 받으려고 조국에서 도망쳐'라는 기사를 실었다. 기사는 "이들의 사연은 거칠고 낭만적"이라며 "대학 측에서 이들을 위해 모금을 하고 교수들 가정에 배치해 영어를 배우게 했다"고 전하고 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하워드대학에 입학한 이들은 그 해 7월 24일, 인류학자 앨리스 플레처와 함께 '달아 달아' '매화타령' '아리랑' 등 11곡의 한국 노래를 녹음한다. 아직 유성기 원반도 나오기 전이라 6개의 실린더(원통형 음반)에 담겼다.
그 노래들을 들어본다. 2007년 국내에서 녹음자들의 이름도 모른 채 발간됐던 CD를 통해서다. 왠지 처연한 느낌이 든다.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끼여 누란의 위기에 있던 나라의 엘리트 청년들이 정치적 소용돌이를 피해, 그 소용돌이 때문에, 태평양을 건너 빈털터리 신세로 미국 땅을 밟았다. 어찌어찌해 대학에 입학은 했지만, 마음은 심란했을 터. 멀리 도망쳐온 조국의 노래를 녹음하는 심정이 편했을 리 없다. 그들이 부른 11곡의 노래에서 그 심정이 전해지는 것 같다.
오미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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