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린 더브런 지음ㆍ황의방 옮김/까치 발행ㆍ432쪽ㆍ1만3,500원
'실크로드를 따라가는 것은 유령을 따라가는 것이다. 실크로드는 아시아의 심장부를 관통하지만, 그 길은 공식적으로는 이미 사라져버렸다. 분명치 않은 경계선, 지도에도 등재되지 않은 민족들 같은 그 희미한 흔적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세계적 여행작가인 저자가 2003~2004년 8개월에 걸쳐 1만2,000㎞에 달하는 실크로드를 횡단하며 쓴 여행기다. 그 여로는 중국인들의 전설 속의 조상 황제(黃帝)의 무덤이 있는 산시성 황링현을 출발해 시안을 찍고, 중앙아시아 산지를 지나 터키 남쪽 안티오키아 공국에 이른다.
저자의 여행은 평면적 육로여행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멀고 아득한 길을 따르는 방랑의 기록이자, 3,000년을 오가는 시간여행이기도 하다. 그 여행에서 저자는 낯선 이방인의 시선으로 시간의 소멸과 그 소멸을 잇는 오늘의 역사를 읽는다.
공간여행은 길을 따라 가지만, 시간여행은 사람을 따라 간다. 저자는 여로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 만남을 기록했다. 조악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다며 브라질 이민이라는 엉뚱한 꿈을 꾸고 있는 중국인 황씨, 낟알을 가려내는 체를 완성하려고 애쓰는 대학생 돌콘, 어릴 적 애인과 추억의 도시에서 재회하기를 소망하는 여인 마무다, 인터넷을 고독에서 벗어나는 생명선으로 삼고 있는 화가 겸 시인 아미랄리 등. 이들은 모두 쇠락한 현실을 떠나 마음 속에서 실크로드의 영화를 일구려고 안간힘을 쓰는 군상들인지 모른다.
저자의 깊이있는 역사지식은 실크로드의 유적들을 새로운 각도로 조명하기도 한다. 시안의 명소 비림(碑林)에서 당 태종 시절 중국에 기독교를 전파하려 했던 네스토리우스파 신부 알로반의 행적을 새긴 비석을 찾아내고, 항복한 로마군단 장병들의 후예를 찾기 위해 중국 서부의 오지마을을 헤매기도 한다.
장인철 기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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