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최측의 '설마'가 빚은 참사였다. 경남 창녕군 화왕산(火旺山ㆍ757m) 정상에서 정월대보름 들불축제 도중 돌풍으로 화재가 번져 4명이 숨지고 수십명이 다쳤다. 주변이 3~5m의 성벽으로 싸였고 오목한 분지로 돼 있어 쥐불놀이 장소로는 안성맞춤이다. '불의 뫼' 화왕산은 '겨울에 불이 나야 풍년이 들고 재앙이 물러간다'는 전설도 있어 예부터 그렇게 해오던 곳이다. '불놀이'가 허가된 전국 20여 곳 중 가장 안전한 장소다. 그런데 주최측인 창녕군이 사고의 원인을 '그 놈의 들불축제 탓'이라고 돌리며 이를 폐지하는 것만이 상책이라고 우기니 딱하다.
■같은 날 중국 베이징 중심가에서 위안샤오제(元宵節ㆍ정월대보름) 폭죽놀이를 하다가 관영중앙TV 부속빌딩을 홀랑 태웠다. 베이징의 상징적 건축물이고 수십년 만의 최대의 화재라서 대서특필됐다. 위안샤오제까지 이어지는 2주간의 춘지에(春節ㆍ설) 폭죽놀이로 중국 대도시에서만 매년 200여 건의 대형화재가 발생한다. 그런 중국도 폭죽의 품질을 검사하고, 터뜨리는 장소를 규제하고, 주변의 소방ㆍ방재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더욱 신경을 쓰지, 춘지에 폭죽놀이를 없애겠다는 관리자 중심의 안이한 발상은 하지 않는다. 지금 상황에서 들불축제가 필요한가는 별개 문제다.
■강원도 정선군의 민둥산(1,117m)이 좋은 모델이 될 듯 싶다. 이름처럼 정상 부근엔 나무 대신 억새만 무성해 가을 억새축제엔 매년 수십만명이 몰려든다. 그러다 보니 억새가 훼손되고 싸리와 쑥이 무성히 자랐다. 이들 '잡초'를 제거하기 위해 주민들이 겨울 '들불놓기'를 간청했으나 군청에선 강한 바람과 위험한 지형을 이유로 거부했다. 군의회는 들불놓기가 억새축제에 도움이 된다는 관련 학회의 평가를 받은 뒤, 지난해 5월 군민과 공무원이 총동원된 가운데 1만㎡에 시범적 불놓기를 했다. 안전을 확인하고 올 3월에 일부 지역에서 소규모 들불축제를 할 예정이다.
■정월대보름을 전후한 들불축제는 가을 억새밭을 풍성하게 하지만 환경과 생태계 차원에서 손실도 있을 것이다. 경기 하남시의 미사리 억새밭의 경우 겨울철새 서식지를 없앤다는 주장도 있고, 가을의 풍성한 관광ㆍ휴식지를 제공한다는 주장도 있다. 지형과 여건에 따라 개별적으로 검토가 충분해야 하는 이유다. 축제는 있어야 하고, 거기엔 어느 정도의 모험이 없을 수 없다. 이런저런 고려 없이 무작정 '관광행사'만 벌이고 책임을 바람과 축제 탓으로 돌리는 짓은 염치가 없다. 오늘 밤 제주도 한라산 새별오름에서 열리는 세계적 들불축제가 잘 마무리되기를 바란다.
정병진 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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