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다윈은 1835년 9월 영국해군 항해탐사선 비글호를 타고 남미 에콰도르에서 서쪽으로 970㎞ 떨어진 갈라파고스 군도를 탐험했다. 그는 찰스섬 등 4곳의 섬에 서식하는 13종의 핀치새 부리가 먹이의 상태에 따라 다른 형태로 변한 것을 보고 진화론의 힌트를 얻었다. 작은 씨앗이 땅속 깊숙이 박혀 있는 곳에 사는 핀치는 뾰족한 부리를 갖고 있는 반면, 딱딱하고 큰 씨앗이 많은 지역에 서식하는 핀치의 부리는 뭉뚝하고 큰 것을 발견했다.
다윈은 처음에는 이 새들을 핀치, 검은지빠귀, 굴뚝새 등 서로 다른 종으로 인식했다. 그는 영국에 돌아온 후 이들 새는 핀치류의 다른 종으로 갈라파고스의 극한 환경에서 생존하기 적합하도록 부리가 다양하게 진화된 것임을 깨달았다. 핀치는 다윈진화론의 정수인 자연선택론의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 셈이다.
다윈 탄생 200주년을 맞아 진화론이 집중적인 조명을 받고 있다. 경제 분야에서 다윈이 주목 받는 것은 변이와 선별을 통해 진화의 메커니즘을 밝혀냈다는 데 있다. 다윈은 <종의 기원> 에서 "유익한 개체적 변이는 보존되고 유해한 변이가 버려지는 것은 자연선택, 또는 적자생존에 따른 것"이라고 강조했다. 종의>
핀치새의 다양한 부리 진화
에릭 바인호커는 <부의 기원(2007)> 에서 "경제의 변화는 진화의 원리를 따른다"고 말했다. 생물의 진화가 차별화⇒선택⇒증폭/복제의 과정을 밟듯이 부의 창조도 이 3단계 과정을 거친다는 것이다. 어느 기업이 혁신적 경영기법을 바탕으로 기술 혁신을 이뤘다고 가정하자. 이것이 유망한 비즈니스 모델이 될 것으로 판단되면 다른 기업들도 이를 선택하고 복제하게 된다는 것이다.(좌승희 <진화를 넘어 차별화로(2008)> 참조) 진화를> 부의>
다윈 진화론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진화와 진보를 동일시하는 것이다. 진보는 목적과 방향성을 갖고 있지만, 진화는 맹목적이며 계획한 의도 따위는 없기 때문이다. 진화의 유일한 방향성은 종족 번식을 위한 생존이다. 진화론은 미국 금융위기 후 경제환경이 급변하면서 그 타당성이 더욱 입증 받고 있다. 각국 정부와 기업마다 경제위기 속에서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대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화론은 기업 지배구조에도 적용될 수 있다. 기업의 다양한 지배구조는 창조론처럼 어느날 갑자기 창조된 것은 아니다. 기업별로 성장문화와 경영스타일이 다르다는 점에서 지배구조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기업별로 과거부터 형성된 경로의존성(path defendence)을 무시하고 진보적 시각에서 특정 지배구조만이 절대선이라고 강요하는 것은 독선일 뿐이다.
재벌은 외환위기 주범으로 낙인 찍히면서 지난 10여년간 개혁의 대상이 됐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는 오너경영을 차단한다며 순환출자를 규제하고, 계열사 독립경영과 지주회사 전환을 강요했다. 중ㆍ장기 성장보다는 단기 주주이익을 중시하는 월스트리트 모델(앵글로색슨 모델)이 글로벌 스탠더드로 확산됐다.
주거래은행이 대출을 고리로 기업에 대한 경영지도, 네트워크 지원을 통해 윈-윈을 추구하는 라인모델(대륙식 모델)로 발전한 기업들에게 갑자기 샤일록ㆍ피스톨ㆍ카지노 자본주의의 특성을 가진 월스트리트 모델을 주입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견인차로 평가 받던 재벌조직의 효율성은 철저히 무시됐다. 황제경영, 경제력집중, 소수주주권 침해, 중소기업 영역침범 등 재벌의 불공정성과 비민주성만 부각됐다.
지배구조의 절대선은 없다
오너경영과 그룹경영은 지금 같은 위기 속에서 10년, 20년 후의 장래를 생각하며 과감히 투자하고, 해외 시장을 개척하는 데 강점을 갖고 있다. 삼성 현대차 LG가 전자 자동차 등 주력품목에서 해외 경쟁자들이 고전하는 동안 선전하는 것은 그룹경영의 효율성이 잘 드러난 사례다.
재벌의 소수주주권 침해와 중기영역 침범 등 불공정 문제는 투명경영과 감사 기능 강화로 해결하면 된다. 지배구조 문제는 주주들이 결정할 문제다. 오너와 전문경영체제는 서로 장ㆍ단점이 있다. 특정 경영체제가 좋다며 이를 강요하는 것은 적자만이 생존하는 기업생태계의 진화를 막을 뿐이다.
이의춘 논설위원 e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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