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17)군은 매일 아침 양부모가 사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으로 향한다. 양부모 집 앞으로 오는 스쿨버스를 타야 하기 때문이다. A군은 2년 전 용산 미군부대에서 일하는 미국인 양부모에게 입양됐지만 사실은 친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 미군 부대 내 외국인 학교를 보내기 위해 친부모가 미국인에게 ‘허위 입양’을 시킨 것이다.
서울 용산 등 미군 부대 안의 미국인 학교에 보내기 위해 자녀를 미국인에게 입양까지 시키는 한국 부모들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멀쩡한 부모가 자신의 자녀를 미군 및 미군속 등 미국인의 아이로 둔갑시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친부모와 양부모 사이에 불법적 돈 거래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현재 미군 부대 내 학교가 있는 곳은 서울 용산, 대구, 경기 오산 등 8곳. 이들 학교는 미 국방부 소속 교육처(DoDEA)가 관할하며 우리나라 교육과정으로 유치원부터 초ㆍ중ㆍ고 과정이 모두 미국식 수업으로 진행된다. 입학은 미군 및 미군속 자녀에게 우선권이 주어지며, 미국 시민의 자녀도 다닐 수 있다.
그런데 이들 학교의 한국계 학생 비중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상당수는 불법 입양을 통해 미국인으로 국적세탁을 한 학생들이다. 서울 용산 미8군에 있는 서울미국인고등학교(SAHS)의 경우 지난해 9월 현재 전체 656명의 학생 중 아시아계가 195명으로 30%를 차지했다. 백인 학생 192명(29%), 여타 인종 학생 155명(24%) 순이다.
아시아계는 거의 다 한국계 학생이다. 이 학교 버나드 히플위드 교감은 “아시아계 학생 중 한국계 말고 누가 있겠느냐”며 “대부분이 입양을 통해 입학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문제될 것은 없다”고 말했다.
입양은 친인척을 통해 이뤄지기도 하지만 혈연과 전혀 관련 없는 미군이나 미군속에게 입양되는 경우도 많다. 11일 서울 이태원의 이민수속 대행 사무소에서 만난 입양 전문 브로커 P씨는 “혈연관계가 아닌 입양의 경우 약 2억원(미화 15만 달러) 안팎에 거래가 이뤄진다”고 밝혔다.
그는 “입양할 미국인을 구하지 못해서 그렇지, 자녀를 입양시키려는 한국 부모는 줄을 섰다. 다들 미8군 학교에 보내려고 난리다”라고 말했다. 그는 “입양 후 3년이 지나면 시민권도 얻을 수 있다”며 “한때 한 달에 10여명의 입양 수속을 밟아준 적도 있다”고 했다.
용산 미군부대에서 수년째 근무하며 자신도 이런 ‘신종 사기(scam)’에 관여했다는 미국인 D씨는 “입양을 원하는 미군이나 미군속이 브로커에 접근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며 “브로커는 친부모로부터 15만 달러 정도의 입양비를 받아 양부모가 될 사람에게 전달하고 입양 절차 및 입학 절차를 마무리 한다”고 했다.
이후 3년이 지나면 시민권을 따기 위해 괌, 하와이 등 미국령에 가야 하는데, 이 때 양부모가 동반하고 비용은 모두 친부모가 부담한다. D씨는 “이 모든 과정에서 친부모와 양부모는 만날 일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문제는 돈 거래를 제외하고는 이런 입양을 제재할 수 없다는 것. 민간 입양의 경우 친부모와 양부모가 합의해 구청에 신고만 하면 그만이다. 해외 민간 입양은 친부모가 동의하고 미국 정부가 입양을 허가하면 법적으로 성립된다. 한국 정부가 개입할 여지가 없는 셈이다.
더욱이 테이블 밑에서 주고받는 돈 거래는 사실상 단속이 불가능하다. 주한미군의 한 관계자는 “몇 년 전 이 같은 내용의 첩보가 입수돼 수사를 했지만 증거를 찾지 못해 종결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입양으로 인해 날로 늘어나는 한국계 학생들로 인해 정작 미군 자녀는 입학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7세 여자아이를 키우는 한 미군의 아내 B씨는 “한국(계) 아이들이 너무 많아 내 아이가 들어갈 자리가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대혁 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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