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출범 1년,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전대미문의 경제위기를 국내 경제학자들은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12,13일 이틀간 서울 성균관대에서 열리는 국내 최대규모의 학술대회 '2009 경제학 학술대회'(조직위원장 이종원 한국경제학회장)에서는 한국경제학회 등 48개 학회 회원들이 최근 경제위기와 관련된 400여편의 논문을 발표하고 극복 방안 등을 토론할 예정. 미리 공개된 주요 논문을 살펴본다.
이번 대회에서 차기 경제학회장으로 추대 예정인 김인준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글로벌 금융위기와 한국경제의 현안 및 대응방안'이란 주제발표를 통해 "현재 진행중인 기업 구조조정을 정부가 주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기업 구조조정은 그동안 감춰진 금융기관의 부실이 표면화되는 것인 만큼 금융기관은 구조조정을 수행하는데 한계가 있다"며 "정부는 기업 부실규모를 냉정히 평가해 필요할 경우 공적자금을 조성해서라도 금융기관들의 자본을 재확충하고 부실자산을 처리해야 한다"고 밝혔다.
경제 상황이 악화되면 부실이 전 산업 분야로 확대될 수 있으므로 선제적인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금융사들의 건전성에 대해서도 "한국의 금융기관들은 예대율(예금 대비 대출 비중)이 높아 금융 경색 상황에서 자금 조달이 어렵고 외화부채가 많아 환율이 높으면 우려스러운 상황이 될 수밖에 없다"며 "부동산 가격이 급락할 경우에도 금융기관 부실로 직결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신용 경색이 지속되면 한국은행이 양도성예금증서(CD)나 은행채권을 직접 매입하거나, 정부가 발행하는 재정증권을 인수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며 "2기 경제팀이 금융과 산업부문의 구조조정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 국제 금융시장 악순환 반복 가능성
현정택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실물경제의 불확실성이 심화되면서 국제 금융시장이 다시 불안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될 가능성을 경고했다.
그는 '2009년 세계경제의 여건변화와 한국경제의 과제'라는 논문에서 "올 우리 경제는 상반기 마이너스, 하반기 플러스 성장이 예상된다"며 "기관마다 전망에 차이가 크지만 이는 경기회복 시점에 대한 차이이며 기본적으로는 대책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추진하느냐가 관건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한국경제 회복을 위한 과제로 "실물경제가 안정될 때까지는 외화유동성 확보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며 "기업부문은 일정수준의 대출축소와 이를 통한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그는 "악화일로의 고용사정은 수출보다는 내수가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만큼 정부가 거시적인 차원에서 조기 재정지출 등을 통해 내수급락을 막아 고용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현 원장은 이어 "경제위기 극복 못지않게 성장잠재력 확충이 중요한 시점"이라며 "규제완화와 공공부문 개혁, 서비스산업과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 한미 FTA 비준, 법질서 확립 등으로 성잠잠재력을 확보하는 것이 우리의 국제적 위상을 향상시키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감세정책은 부유층에만 혜택
정부의 대규모 감세정책은 실질적 혜택보다 국가재정만 악화시킬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명박 정부 1주년 평가' 보고서에서 "정부는 감세 혜택이 국민에게 골고루 돌아가는 것처럼 포장하고 있지만 감세의 직접적인 혜택은 주로 대기업과 부유층에게 돌아간다"고 지적했다.
법인세의 경우, 2007년 전체 법인의 0.1%인 324개 기업이 법인세 세수의 61%를 낸 것을 미뤄보면 법인세율 인하의 혜택은 주로 대기업에 돌아간다고 예상했다.
소득세는 총급여 2,000만원인 4인 가구의 세부담액이 4만원 줄어드는 데 비해 총급여 1억원인 가구는 99만원이 줄게 돼 소득 수준이 5배 높은 가구의 소득세 감세 혜택이 25배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대기업과 부유층의 투자 및 소비가 경제 전체에 활력을 줄 것이라는 정부 주장도 효과가 불확실하다"며 "정부는 재정 악화를 피하고자 공기업을 팔아 세수를 마련하고자 하겠지만 최근 대우조선해양 사례처럼 경기가 안 좋을 때는 공기업 매각도 힘들다"고 지적했다.
■ 반시장적 정책이 금융위기 촉발
좌승희 경기개발연구원장과 황상연 책임연구원은 이번 경제위기의 원인이 된 미국의 주택금융위기가 예고된 인재(人災)였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미국 주택금융위기에 대한 새로운 해석: 반시장적 정치이념의 개입에 대한 시장의 반격' 논문에서 "미국의 위기는 불완전한 시장에 의한 '자연 발화'가 아닌, 미 정부가 주택보유율을 높이기 위해 주택금융시장에 반시장적인 개입을 하면서 초래된 '인공 발화'에 가깝다"고 분석杉?
클린턴 집권 이후 16년간 미 주택정책의 초점은 주택보유율 확대에 맞춰졌고 명시ㆍ묵시적인 정부보증을 기반으로 주택금융공급이 확대돼 이전에는 주택보유를 꿈꾸지 못한 계층의 주택소유 노력이 수요를 창출했다는 것이다.
즉, '가난한 사람도 집 한 채 가질 수 있게 한다'는 정치적 이념이 각종 지원제도를 통해 경제주체들의 도덕적 해이를 만연시켰다는 주장. 이들은 "정부는 어떠한 경우에도 주택금융을 받을 수 있는 사람과 아닌 사람을 구별하는 시장의 기능을 무력화해선 안된다"고 지적했다.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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