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국내 굴지의 민간경제연구소인 삼성경제연구소와 현대경제연구원이 올 한국경제 성장률을 각각 -2.4%와 -2.2%로 수정 전망했다. 불과 두 달여 만에 성장 전망치를 한꺼번에 5%포인트 이상 낮춘 것으로, 그만큼 경제상황이 심각하다는 얘기일 터이다.
그런데 시점이 묘하다. 윤증현 신임 기획재정부 장관이 10일 취임 기자회견에서 올해 성장 전망치를 두 달 전(3%)보다 5%포인트나 깎아 -2%로 발표하자, 바로 다음 날 민간 경제연구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마이너스 성장률을 제시한 것이다.
시계를 한 두 달 전으로 되돌려보자. 당시 외국계 투자은행과 연구기관들은 우리나라의 금년도 성장률이 마이너스가 될 것이란 충격적 전망을 내놓기 시작했다. 한 두곳도 아니고, 거의 모든 외국계 기관들이 그랬다.
하지만 국내 연구소들은 ‘플러스 성장’전망을 계속 고수했다. 그것도 정부가 내놓은 전망범위(3~4%)와 크게 벗어나지 않는 수준에서. “외국계들이 한국을 너무 비관적으로 본다”는 얘기도 했다. 그러던 연구소들이 새 경제팀 출범과 함께 정부가 마이너스 전망을 내놓자, 그제서야 ‘안심’하고 마이너스 성장률 예상치를 공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쯤 되면 민간 연구소들이 경제전망 조차 정부 눈치를 보고 있음은 자명해진다. ‘민간’ 연구소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연구소란 모름지기 공신력이 생명인데, 이래서야 신뢰가 설 수 있을는지.
왜 눈치를 보게 된 걸까. 답은 간단하다. 눈치를 주니까, 눈치를 보게 됐을 게다. 나쁜 전망수치를 내놓으면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정부 당국자들로부터 ‘섭섭함’ 혹은 ‘불쾌감’이 전달된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 오죽하면 최근 물러난 한 연구기관장이 “연구기관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정부는 한갓 사치품으로 여긴다”는 말로 퇴임사를 갈음했을까.
눈치 주는 정부, 눈치 보는 연구소. 참으로 서글픈 현실이다. 둘 다 문제지만 굳이 경중을 따지자면, 힘있는 정부가 더 문제라 하겠다.
김용식 경제부 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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