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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조치 1호 첫 재심 청구/ 유신때 불만 얘기했다 고문당하고 징역살이 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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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조치 1호 첫 재심 청구/ 유신때 불만 얘기했다 고문당하고 징역살이 恨

입력
2009.02.13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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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5월 경기 평택의 농촌에서 축산업을 하던 오모(당시 33세)씨는 읍내에 볼 일이 있어 평택읍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오씨는 버스 안에서 반공웅변대회에 참석하러 군 교육청으로 향하던 한 여고생의 옆 자리에 앉게 됐고, 이 학생과 몇 마디 대화를 주고받았다.

오씨는 학생에게 "저축은 해서 뭐 하느냐, 나라에서는 분식을 장려하지만 정부 고관들은 실제로 계란과 육류가 태반인 분식을 한다"는 등의 이야기를 했다. 학생은 대화 내용을 바로 반공 담당 교사에게 알렸고, 교사는 이 사실을 중앙정보부(중정)에 신고했다.

중정은 며칠 후 오씨를 긴급조치 1호 위반 혐의로 영장 없이 체포ㆍ구금했다. 그 해 1월 제정된 긴급조치 1호가 헌법을 반대ㆍ비방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하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오씨는 중정에서 고문과 협박을 이기지 못해 범죄사실을 허위 자백했고, 중정은 이 자백 조서를 경찰이 작성한 것처럼 꾸며 오씨를 비상보통군법회의 검찰부에 송치했다. 민간인이었던 오씨는 군법회의에 회부돼 징역 3년 및 자격정지 3년을 선고 받았고 77년 7월 만기 출소했다.

서슬 퍼렇던 긴급조치는 80년 10월 새 헌법이 시행되면서 법의 효력을 잃었지만, 오씨는 30년이 넘도록 국가로부터 자신의 결백을 확인받지 못했다.

11일 오씨는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이 사건을 다시 심판해 달라며 재심을 청구했다. 오씨는 당시를 회고하며 "상상도 할 수 없는 생지옥이었다, 고문을 받다가 기절하면 주사를 놓아 다시 깨워서 고문했다"며 몸서리쳤다. 긴급조치 제1호에 대한 재심 청구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현행 형사소송법상 폐기된 법률에 대해서는 '무죄'가 아닌 '면소(免訴)' 판결을 내리게 돼 있어 재심 청구에서 오씨가 무죄를 선고 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면소는 공소권이 없는 경우 기소를 면제해 주고 소송의 종료를 선언하는 판결이다.

이에 대해 오씨의 재심 청구를 지원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은 "과거 사법부가 불법적 공권력 행사를 확정ㆍ방조해 긴급조치 사건 피해자가 발생한 것"이라며 "법원이 기계적 면소 판결을 내릴 것이 아니라 실체적 재판을 통해 국가가 자행한 폭력을 단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변은 재심 청구와 함께 "형사소송법 제326조 면소 조항이 헌법에 위반된다"며 법원에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다.

이영창 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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