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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인과관계

입력
2009.02.13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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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참사의 책임 공방에서 '인과관계'란 말이 자주 들린다. 참사의 원인이 철거민의 화염병 농성인지, 경찰의 과잉진압인지를 가리는 잣대 또는 근거로 제시한다. 그런데 철거민과 경찰은 물론 언론과 법률가들도 서로 아주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 바람에 헷갈리기 십상이다.

저마다 엄밀한 법리보다 편향된 고려를 좇는 탓이지만, 언뜻 단순한 인과관계 개념 자체가 실제 민ㆍ형사 사건에서 올바로 분별하기 쉽지 않다. 형법상 개념은 "행위와 결과 사이에 불가분의 연관관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구체적 적용에 관해서는 학설이 엇갈리고 법원도 곧잘 그릇 판단한다.

■중구난방 논란에서 1차 시비를 가린 검찰은 철거민이 뿌린 시너에 화염병 불이 번진 것이 참사의 원인이라고 결론지었다. "경찰 진압은 사전준비 등에 아쉬움이 있으나, 참사는 경찰의 지배영역 밖에서 발생해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변 등 시민사회단체는 "과잉진압이 없었으면 참사도 없었을 것"이라고 맞선다. 언뜻 양쪽 모두 옳은 것 같고, 어느 한 쪽을 편들기를 망설일 만하다. 어쨌든 민변 쪽은 고전적인 '조건설'에 기댄 듯 하다. 어떤 행위가 없었더라면 그런 결과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논리적 조건관계만 있으면 인과관계를 인정하는 이론이다.

■그러나 이는 "폭력 농성이 없었더라면" "재개발이 없었더라면" 식으로 인과관계를 무한히 확장하는 오류에 이를 수 있다. 이에 따라 단순한 조건에는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거나, 도중에 타인의 행위가 개입되면 인과관계가 중단된 것으로 보는 학설 등이 나온다. 오늘날 다수설은 인과관계가 있는 것만으로는 결과에 대한 형사책임이 없다고 본다. 구체적 결과가 객관적으로 예견과 지배 가능한 것이고, 행위자가 회피 가능한데도 회피하지 않은 때만 책임을 인정한다. 검찰의 결론은 대체로 여기에 어울린다.

■물론 최종 판정은 법원 몫이다. 그런데 그제 한국일보에 따르면 어느 판사는 "경찰이 '올라오면 뛰어내린다'는 고공 농성자의 경고를 무시하고 접근하다가 농성자가 실족사했다면 경찰을 무혐의로 볼 수 있겠느냐"며 검찰을 비판했다고 한다. 새삼 헷갈리지만, 이런 비유는 애초 빗나간 느낌이다. 화염병 농성과 고공 농성을 나란히 놓고 인과관계나 형사책임을 논할 수 있을까 싶다. 난해한 법리를 깨우치기에는 오히려 난삽하다. 대중과 언론은 어떻든 법률가들만이라도 법리에 충실한 논평으로 사회적 논란을 올바로 이끌어야 세상이 조금이라도 평온해질 것이다.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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