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지와 형을 살해해주면 유산을 받아서 한 몫 떼어주겠다."
지난해 12월 4일 영국 대학에 유학 중인 A(19)씨는 인터넷에서 '청부살인 카페'를 발견, 카페운영자 B(25ㆍ대구시)씨에게 아버지와 형을 살해해 줄 것을 의뢰하는 메일을 보냈다. 아울러 계약금으로 115만원을 송금했다.
그러나 B씨는 청부살인에 나선 것이 아니라, A씨의 아버지에게 "아들이 당신을 살해해달라고 부탁했다. 돈을 주지 않으면 경찰에 알리겠다"고 협박 메일을 보냈다.
상사 임원으로 해외에 근무 중인 아버지는 아들이 자신을 죽이도록 의뢰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지만,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885만원을 B씨에게 송금하고 입을 막았다.
B씨는 실제 청부살인업자가 아니라 이를 미끼로 돈을 가로채는 사기꾼이었다. 대전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11일 B씨를 상습사기와 공갈 등 혐의로 구속하고 이 카페를 폐쇄했다.
경찰은 A씨를 추적했으나 지난달 다른 카페에서 아버지와 형의 살해를 청부한 혐의(존속살인음모 등)로 이미 구속된 상태였다.
경찰조사 결과,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 조기유학을 떠난 A씨는 "교통사고로 위장해 형을 먼저 살해한 뒤 외국에 살고 있는 아버지가 장례식 참석차 귀국하면 같은 방법으로 살해하라"고 구체적인 살해 계획까지 전달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A씨는 "가족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것에 부담을 느껴 혼자 살고 싶었다"고 경찰에 털어놓았다.
카페 운영자 B씨는 "의뢰인들이 스스로 죄가 크기 때문에 신고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해 청부살인 사기를 구상했을 뿐 실제 누굴 살해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고 말했다.
B씨는 의뢰인들에게 '완벽한 처리' '안전보장' 등을 강조했고, 메일로 '살해 2,000만원, 자살위장 2,400만원, 사고처리 2,600만원' 등의 비용을 제시한 뒤 흥정을 벌이기도 했다.
B씨에게 살인이나 폭행을 청부한 사람은 A씨 외에도 여럿 있었다. 서울에 사는 주부 C(23)씨는 18세에 만나 함께 살아온 남편(오락실 종업원)의 상습폭력에 못 견뎌 살인을 청부했다.
C씨는 B씨를 직접 만나기도 했지만 신뢰가 가지 않는다며 최종 의뢰를 포기했다. 식당 주인 D(28)씨는 해고된 종업원이 찾아와 행패를 부리고 얼굴에 침까지 뱉었다며 살인을 청부했다. D씨는 B씨와 메일을 주고 받으며 "비용이 부담스러우니 좀 깎아달라"고 요구하다가 결국 포기했다.
회사원 E(34)씨는 부부싸움을 한 뒤 홧김에 아내의 오른팔을 절단해달라는 끔찍한 요구를 했다. 대학생 F(26)씨는 채팅 중 자신에게 욕설과 모욕을 가한 상대방에 대해 폭력을 가해달라는 메일을 보냈다. 하지만 B씨가 실제로 답장을 보내 '상해 900만원' 등 가격을 제시하고 구체적 계획을 협의해오자 연락을 끊고 포기했다.
경찰은 A씨를 제외한 의뢰인 4명을 모두 살인예비음모 및 상해교사 등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한편 청부살인 카페들은 단속을 피하기 위해 '청부살인' 등의 말을 직접 노출하지 않고 심부름센터 등으로 위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전경찰청 장현수 경위는 "가족의 청부살해 및 상해를 의뢰하는 사람들이 많은 사실에 놀랐다"고 말했다. 경찰은 사회적 해악이 큰 만큼 청부살인 카페에 대한 수사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대전=전성우 기자 swch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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