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동구 대구종합복지관 3층에 들어선 '신세계 희망장난감 도서관'. 미끄럼틀과 미니자동차, 장난감시소와 흔들코끼리가 따사로운 오후 햇살을 받으며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미니주방도 차려져 있고, 실제 연주가 가능한 장난감 악기들도 가지런히 놓여져 있다. 벽을 따라 늘어선 책꽂이 칸마다 바비, 뿡뿡이와 건담, 디보가 아이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어린이집을 마친 아이들이 하나 둘 씩 찾아 들면서 조용하던 도서관이 금세 시끌벅적해진다. 친구들과 함께 도서관에 온 영찬(7)이는 "레고와 기차놀이가 제일 재미있다. 집에는 레고 세트가 5개밖에 없는데 도서관에는 너무 많다"며 부지런히 레고 조각을 이어 붙인다.
지난해 3월 설립된 신세계 희망장난감 도서관에는 모두 350여개의 장난감이 비치돼 있다. 0~7세를 대상으로 꾸며진 이 공간은 그야말로 놀이터다. 다양한 장난감과 안전 시설이 마련돼 있고, 자상한 선생님들도 아이들을 위해 항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도서관은 신세계와 어린이재단이 공동으로 지역사회 저소득층 어린이들에게 장난감 대여를 비롯해 교육 및 치료 프로그램을 제공하고자 만들어진 공간이다. 이 곳을 자주 찾는 가을(10), 하늘(7), 청명(5) 세 자녀를 키우는 유도열(37), 정용득(32)씨 부부는 희망장난감 도서관이 생기면서 가족에게 찾아온 작은 행복이 마냥 감사하다.
"빠듯한 형편에 옷보다 더 비싼 장난감 사주는 게 부담스럽죠. 한 번은 할인점에서 청명이가 5만원이나 되는 로봇을 손에 꼭 쥐고 안 놓길래 야단을 쳤어요.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며 '다른 아이들은 다 있어' 하는데 마음이 얼마나 아프던지…." 아버지 유씨가 장난감에 취해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옆에 있던 정씨가 거든다. "왜 애들 장난감 안 사주고 싶겠어요. 하지만 너무 비싸니깐 힘들죠. 아이들이 장난감 한두 개로는 싫증도 금방 내니까 큰 맘 먹고 사줬다가도 돈 아까운 생각이 들거든요."
국민기초생활수급자인 유씨 부부가 정부에서 받는 보조금은 한 달에 약 130만원. 그 중에서 어린이집, 학습지 회비 등 아이들 밑으로 들어가는 돈이 50만원을 넘는다. 유씨는 "동생한테 장난감 하나 사주면 큰 애한테도 하나를 꼭 따로 사줘야 해요. 장난감 하나를 사주려면 세 개를 사야 하는 셈이니 우리 형편에 무리 아니겠어요?"라고 되묻는다.
신세계 희망장난감 도서관이 생긴 후 유씨 가족은 일주일에 서너 번, 가끔은 하루에도 수 차례 도서관을 들락거린다. 정씨는 "시골이라도 한 번 내려갈 때면 청명이가 곧장 도서관에 들려 커다란 자동차를 들고 나타나 '이걸 타고 가겠다'고 할 정도로 아이들이 좋아한다"며 밝게 웃었다.
유씨도 "한 번 들릴 때면 2시간은 꼬박 장난감을 갖고 논다"며 "도서관이 생기기 전에는 아이들이 어떻게 놀았나 싶을 정도"라고 했다.
희망장난감 도서관에 다니면서 아이들의 태도도 달라졌다. 유씨는 "아이들이 할인점에 가면 눈이 휘둥그레져서 이것 저것 사달라고 고집을 피워 난처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며 "도서관이 생기면서 수십 만원씩 하는 비싼 장난감도 원하는 대로 고를 수 있게 돼 새로 사달라는 말이 쏙 들어갔다"고 말했다.
또 "무엇보다 빌려 쓰는 것이니, 더 소중히 다루고 돌려줘야 한다는 책임감을 깨우치게 된 것도 과외 소득"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유씨 부부는 "아이들에겐 장난감이 가장 큰 보물인데, 도서관이 생기면서 아이들이 매일 보물 창고에 들릴 수 있게 된 셈"이라며 "손도 못 대고 높은 곳에 있는 장난감을 그저 쳐다보고만 있는 게 아니라, 직접 만지고 제 것마냥 신나게 갖고 놀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게 부모로서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른다"고 말했다.
희망장난감 도서관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장시진 사회복지사는 "이 지역은 대구에서도 문화적인 인프라가 전혀 구축돼 있지 않은 낙후된 곳이어서 평소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거나 돌멩이를 갖고 노는 게 전부였다"며 "아이들이 마음껏 꿈을 키울 수 있는 공간이 생긴 이후 아이들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고 말했다.
● 신세계 희망장난감 도서관
신세계 희망장난감 도서관은 2007년 3월부터 매년 2곳씩 문을 열어 현재 제주, 광주, 대구, 인천, 부산 5개 지점이 운영되고 있다.
도서관별 월평균 누적 이용건수는 제주1호점 1만2,890여건, 광주2호점 6,500여건, 대구3호점 3,996여건, 인천4호점 811여건, 부산5호점 1,019건 등 연간 1만7,000여명이 5만여개 장난감 대여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신세계 희망장난감 도서관은 국내 최초로 시작된 전 직원 개인기부 프로그램 '신세계 희망배달 캠페인'의 일환이다. 이 캠페인은 개인이 일정액을 기부하면 신세계가 매칭 그랜트(Matching-grant) 방식으로 같은 액수를 내놓아 마련한 기금을 저소득계층 아동과의 1대 1 결연이나 난치병 치료에 활용하는 것.
2006년 3월부터 시작해 지난해 말까지 전체 임직원의 85%인 1만8,000여명이 참여해 매월 2억원 이상의 기금을 조성, 나눔 활동에 쓰고 있다. 이 중 희망장난감 도서관 건립비용으로 들어가는 비용은 한 곳 당 약 5,000만원. 향후 매년 2곳씩 전국 16개 시ㆍ도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밖에 신세계 본사를 포함한 백화점 7개 점포와 이마트 120개 점포, 관계사 등 전국적으로 180여개의 유통망을 활용해 소외계층 및 사회복지단체에 대한 결연활동도 벌이고 있다.
어린이재단 김석산 회장은 "신세계 희망장난감 도서관 사업은 단순히 회사 차원의 사회공헌 활동이 아니고, 개인 기부를 기반으로 모금된 자원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의미에서 차별성을 지닌다"며 "이런 선진국형 개인기부 문화는 희망장난감 도서관 사업을 꾸준히 지속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대구=강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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