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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바이-아메리칸' 정책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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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바이-아메리칸' 정책의 교훈

입력
2009.02.13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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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계경제는 신보호주의의 담벼락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들고 있다. 지난달 말 미국 하원이 경기부양법안을 통과시키면서 '바이-아메리칸(buy-american)' 조항을 집어넣었다. 경기부양법에 의한 정부지원을 받은 교량 보수 등에 들어가는 모든 철강제품은 미국에서 만든 것만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WTO체제에서 이 같은 자국산 사용의무는 동남아나 중남미의 3류 국가에서나 할 만한 조치인데, 지금까지 세계 자유무역주의를 이끌어 오던 미국의 의회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조치를 하였다.

역사 유물 되살린 미 의회

사실 '바이-아메리칸' 은 1980년대 섬유, 가전에서 아시아 국가들이 만든 제품이 물밀 듯이 들어갈 때 미국에서 한때 고조되었다가 사라진 역사적 유물이다. 그런데 리먼 브라더스 도산으로 촉발된 금융위기가 걷잡을 수 없이 실물경제로 번지고 미국의 자존심이라고 할 수 있는 철강, 자동차 산업 등이 어이없이 무너지자, 지역구에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미 하원이 경기부양법안을 통과시키면서 이 같은 선심용 보호주의 조항을 되살린 것이다.

미국에는 '의회의 보호주의-대통령의 자유주의'란 말이 있다. 1930년대 스무트-홀리 악법과 이번 '바이-아메리칸' 정책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경제가 어려워 질 때 의원들은 보호주의를 요구하는 지역구 민심을 대변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국민경제 전체를 봐야 하고 국제사회에서의 리더십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 미국 대통령의 입장은 좀 다르다. 항상 지엽적 문제에 집착해 보호주의로 회귀하려는 미 의회의 행동에 제동을 걸고 미국을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이 되도록 자유주의 정책을 써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1980년대 중국산 섬유제품 수입에 반덤핑 부과를 요구하는 미의회의 요구를 레이건 대통령은 단호히 거부했고 그 이후에도 클린턴과 아버지 부시 대통령도 항상 의회의 보호주의 움직임에 맞서려고 노력했다. 사실 미국이 철강분야에서 '바이-아메리칸' 정책을 취하면, 가뜩이나 어려워진 자국산업을 보호하기위해 근질근질해 하던 EU나 일본, 한국 같은 나라들도 얼씨구나 하고 정부지원 자금에 자국산 사용의무라는 꼬리표를 달 것이다. 이미 프랑스는 자동차 부품에서, 중국은 기계장비에서 자국산 구매를 강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 같은 악순환이 확대되면 세계 모든 나라에서 단순히 철강 한분야 뿐만 아니라 제조업과 서비스 분야로 보호주의가 확대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세계경제는 걷잡을 수 없는 대공황의 구렁텅이에 빠질 것이다.

미국 피터슨 국제연구소의 게리 후프바이어와 제프리 쇼트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이번 '바이-아메리칸' 조치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철강 일자리는 겨우 1,000여 개에 불과하다. 반면 이 같은 철강 보호주의가 EU, 중국 등 미국의 교역대상국으로 확산돼 이들이 미국산 철강을 예전보다 적게 수입할 경우, 미국 철강산업이 잃을 일자리는 무려 6,500개나 된다.

세계자유무역 정신 확인을

'바이-아메리칸' 정책에서 우리가 확실히 배워야 할 교훈이 있다. 아무리 경제가 어려워지더라도 지난 반세기 동안 세계가 힘을 합쳐 정착시킨 WTO 자유무역주의 체제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미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가을 G-20금융정상회담에서 이 점을 강조하였으며, 오바마 대통령도 2월초 하원 표결 뒤 '바이-아메리칸' 정책이 국제규범에 어긋나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였다. 오는 4월 런던에서 모일 G-20 국가 지도자들이 중지를 모아 보호주의 유혹을 물리치고 세계자유무역 정신을 다시 확인하는 리더십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안세영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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