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경기 침체 와중에도 위기를 기회로 바꾼 일본 경제계 인사들이 잇따라 우리나라 재계와 정부에 불황 극복 방안을 조언하고 나섰다. 과거의 성공 경험에서 탈피, 통념을 깨고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야 한다는 게 이들이 내 놓은 위기 극복 비책이다.
■ 고가 노부유키 노무라증권 회장
"위기일때 공격 경영 고객 제일주의 실현"
"지속적 성장을 위해선 과거의 성공경험에 사로 잡히지 말아야 한다."
전경련 부설 국제경영원이 개최하는 '2009 최고경영자 신춘포럼(13일)' 참석차 방한하는 고가 회장은 11일 미리 배포된 '글로벌 금융위기 영향과 전망-위기는 절호의 기회인가'란 주제의 강연자료를 통해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는 발상의 전환'을 거듭 강조했다.
노무라 증권은 지난해 말 미국발 금융위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리먼 브러더스의 사업부문 및 자산을 과감히 인수, 세계 금융계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남들은 축소할 때 노무라는 오히려 확장하는 '역발상'의 전략을 택한 것이다.
고가 회장은 "리먼 브러더스가 갖고 있는 세계적인 인재, 광범위한 고객 기반, 정보기술 플랫폼 등의 강점은 주로 일본 고객들을 상대로 해 성장해 온 노무라에게는 도약의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평가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결단은 매우 단기간 내에 내려졌다"며 "위기 때일수록 발상의 전환을 통해, 리먼 브러더스의 방식을 추종하는 것도 아니고 노무라의 방식을 강요하려는 것도 아닌 '뉴 노무라'를 만들고 나아가 창업 정신인 '고객제일주의'를 실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무라 증권은 리먼 브러더스 부문 인수로 직원수가 1만8,000여명에서 2만4,000여명으로 늘어났다.
■ 고다 미네오 닌텐도 한국지사장
"게임은 젊은층 전유물? 고정관념부터 버려야"
"고정관념을 깨면 길이 보인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언급, 화제가 되고 있는 일본 게임업체 닌텐도의 고다 미네오 한국지사장이 닌텐도 신화의 비결을 살짝 공개한다.
고가 회장과 함께 전경련 신춘포럼에 참석하는 고다 지사장도 이날 미리 배포된 자료에서 "게임은 어린이나 젊은 남성만 하는 것이란 업계의 상식과 고정관념에 의문을 던진 것이 출발점이었다"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연령, 성별, 게임경험의 유무 등을 불문하고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제품을 고안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닌텐도는 '게임의 정의'를 확대, 5세부터 95세까지 남녀노소 누구나 간단하고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게임을 연구하게 됐다. 복잡한 버튼이 아닌 하드웨어의 직감적인 움직임을 통해 조작되는 새로운 기능을 도입한 것도 기존의 상식을 깼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닌텐도는 현재 터치스크린에 직접 글씨를 써서 문자를 입력하는 기능, 몸을 움직이며 플레이할 수 있는 동작인식기능 등까지 갖고 있다.
고다 지사장은 "통념을 깨면 새로운 시장이 열린다"면서 "발상은 바꾼 결과 지금까지 게임 매장에선 볼 수 없었던 독특한 광경이 연출되고, 게임을 그만 둔 사람들과 지금까지 게임을 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도 게임을 즐기게 됐다"고 소개했다.
■ 다케모리 슘페이 게이오대 교수
"공공부문 투자만이 현재론 유일한 해법"
"현재로선 공공투자가 유일한 해법이다"
11일 서울 조선호텔에서 열린 경총 주최 최고경영자 연찬회에서 다케모리 슘페이 게이오대 교수는 '경제위기를 맞은 아시아ㅢ 생존전략' 특강을 위기타개해법으로 정부 공공부문 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1990년대 일본 민간 기업들은 위기 상황에서 충격을 흡수하는 역할을 맡아 불필요한 인력을 해고하지 못하고 근속 시켜야만 했다"며 "그러나 이러한 노력이 일본 경제에 초래한 결과는 민간부문의 경쟁력 약화와 장기간에 걸친 침체였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어 "기업들은 마치 타이나닉호처럼 승객(근로자)들을 내보내지 않고 경제적 충격을 감내할 수 있을 만큼 견디다가 결국은 위기가 치명적 수준에 다다랐을 때 모든 근로자와 함께 바다 밑바닥으로 가라 앉았다"며 "전 세계적인 경기 회복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공공 투자만이 경제가 무너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밝혔다.
다케모리 교수는 특히 "1930년대 대공황이 세계 경제를 강타했을 때 프랑스는 프랑화의 가치 하락으로 충격의 초기 여파를 피할 수 있었으나 오히려 잘못된 대책을 초래, 다른 국가보다 더 오랜 기간 동안 경기 침체를 겪어야 했다"며 "'한국과 일본은 이런 운명을 겪지 않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박일근 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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