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서울 중구 무학동 5층짜리 녹색 건물에 자리한 중구보건소. 오전 9시 진료 시작 전부터 사람들의 발길이 줄을 이었다.
이재춘(36) 안이화(36)씨 부부는 19개월 된 아들 대환이 예방접종을 하러 왔다. 안씨는 첫째 승미(3)를 가졌을 때 무료로 철분제를 받은 이후 '보건소 마니아'가 됐다.
대환이를 가졌을 땐 초음파, 혈액 검사 등 7,8회 가량 임신부 건강관리를 받았다. 종합병원에선 50만원 가량인 검사가 모두 공짜였다. 남편은 금연상담소, 친정어머니는 치과와 물리치료실 단골이니 '보건소 패밀리'인 셈이다.
예방접종을 끝낸 안씨는 접종실 안 '북스타트실'에 들렀다. 보건소에서 6~24개월 영유아들에게 6개월에 한 권씩 책을 무료로 나눠주는 곳이다.
'응가하자 끙끙'을 받아든 대환이는 상담사가 구연동화를 하듯 "삐약이가 배가 아파 응가를 하고 있어"라고 하자 까르르 웃었다. 안씨는 "요즘 같은 불경기에 이만한 서비스와 시설을 공짜로 이용할 수 있는 게 어디냐"며 만족해 했다.
금연상담소를 찾은 '40년 골초'인 오일환(62)씨. 그는 지난해 12월 금연을 결심하고 168일 과정의 금연프로그램에 등록했으나, 잦은 연말 술자리에서 도둑 담배를 피우느라 발길이 뜸해졌다. 보건소의 '금연 스토킹'은 끈질겼다. 오씨는 "끊임없이 '금연 성공하세요' '요즘 안 오시는데 빨리 들리세요'라는 문자 메시지와 전화를 해 와 미안해서 다시 오게 됐다"고 말했다.
한방과에 마련된 6개의 침상도 모두 만원이었다. 침을 맞으면 1,000원, 약까지 타면 2,100원인데, 65세 이상은 무료다. 지팡이에 몸을 기댄 유용림(76ㆍ여)씨는 2년 전 '보건소 가족'이 됐다.
"우리 같은 늙은이가 한의원에 가려면 부담이 큰데 이곳은 공짜인데다 효과도 좋다." 침을 맞은 할머니는 같이 온 친구에게 "이제 3층 가자, 물리치료실!"이라며 놀이터에 나온 소녀처럼 들떴다.
똑똑하고 친절해진 보건소에 서민들이 몰리고 있다. 최근 지방자치단체들의 집중적인 투자와 서비스 업그레이드에 힘입어 지역 주민들의 '건강 지킴이'로 거듭난 보건소의 인기가 경기 불황을 타고 더욱 치솟고 있다.
김인국 서울송파보건소장은 "예방 교육부터 검진, 진료, 사후관리까지 토털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애쓰는데, 직원들이 식사를 하기 힘들 정도로 내방객이 많다"고 말했다.
최고 인기 비결은 역시 저렴한 비용. 일반병원에서 7,200원인 1차 진료비는 500원, 1만원인 건강진단서는 1,500원, 3만원 가량인 골밀도 검사도 6,000원이면 받을 수 있다.
20만원 가량 하는 건강검진도 단돈 5,000원이면 된다. 65세 이상은 무료다. 서울 송파보건소를 자주 찾는다는 정예덕(64)씨는 "무릎을 다쳐 침 맞고 약까지 탔는데 2,000원만 냈다"면서 "나 같은 할머니에겐 보건소가 효자"라고 말했다.
그러나 '싼값'만으로 보건소 흥행몰이를 설명할 수는 없다. '보건소=예방접종 하는 곳'은 옛말이다. 병원보다 의료나 서비스의 질이 낮다고 인식됐던 보건소는 아기마사지(광진), 몸짱만들기(성북), 키플러스 프로젝트(강동), 뱃살 1인치 줄이기(강서), 수중 운동교실(전북 김제), 한방이동진료(충북 보은) 등 최근 트렌드를 반영한 특색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 손님 끌기에 성공했다. 송파보건소는 연회비 2만원만 내면 전담 주치의를 통한 건강정보 제공과 골밀도 검사 등 '명품'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의료진과 장비도 업그레이드됐다. 송파보건소는 전문의만 6명이고, 중구도 의사 8명 중 절반 이상이 전문의다. 의사, 간호사 뿐 아니라 치과의사, 한의사, 약사, 물리치료사, 치과위생사, 정신보건전문요원 등도 상주한다.
서울시내 보건소의 절반 가량은 엑스레이 촬영 후 필름 출력 없이 바로 컴퓨터로 볼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1억원이 넘는 대학병원급 골밀도 촬영기를 갖춘 곳도 있다.
건강을 매개로 한 문화사랑방 노릇도 한다. 중구의 경우 '굿피아'(굿바이 아토피) '구구팔팔지기'(99세까지 팔팔하게 살자) 등 6개 주민건강동아리가 보건소의 지원을 받아 활동하고 있다. 조팝나무 때죽나무 등 254그루로 꾸민 옥상 하늘정원은 주민들의 쉼터로 사랑 받고 있다.
홍혜정 중구보건소장은 "보건소 의료환경에 대한 젊은 엄마들의 인식이 바뀐 데다 경기 침체가 이어지면서 보건소를 이용하는 주민들이 늘고 있다"면서 "노인과 직장인이 많은 지역 특성을 살려 만성질환이 발생하기 전에 관리하는 건강증진사업에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송태희 기자 bigsmile@hk.co.kr
장재용 기자 jy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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