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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사이비 보수주의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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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사이비 보수주의자들

입력
2009.02.11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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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보수 정권'이 들어서면서 정계는 물론 사회 전반에서 '보수' 인사들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하지만 대체 '보수'란 무엇인가. 현 정부를 포함해 광복 이후 보수를 표방하는 정권이 줄줄이 들어섰지만, 정작 보수가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검토는 드물었다. 보수주의를 막연히 변화를 거부하고 기득권을 고수하려는 태도쯤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와 같은 '맹목적 수구'는 정치철학으로서의 보수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에드먼드 버크의 '정통 보수'

정통 보수주의는 에드먼드 버크가 1790년에 〈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에서 프랑스혁명에 대한 비판을 제기한데서 기원한다. 버크 이후 오늘날까지 보수주의 정치사상은 버크의 사상을 세련되게 다듬고 확대한 것에 불과하다. 근대 이데올로기들 가운데 보수주의만큼 한 사람의 사상에 의존한 정치사상도 없다. 마르크스를 모르는 사회주의자가 있을 수 없다면, 버크를 모르는 보수주의자는 더더욱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버크의 보수주의는 18세기 계몽주의의 과도한 이성주의에 대한 반발로 출발했다. 그는 여러 대에 걸친 인간 경험의 진수인 관행·전통·편견이, 한 세대나 한 개인의 추상적 이성보다 훨씬 깊은 지혜와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그가 프랑스 혁명을 반대한 것도 혁명 세력이 '인민주권'이라고 하는 추상적 권리를 앞세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버크는 '전통 속에서 구체화된 자유'에 대해서는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그는 1215년의 마그나 카르타와 1688년의 명예혁명의 정당성을 인정했다. 뿐만 아니라 종교개혁의 필연성을 받아들였다. 버크는 종교개혁의 성과를 논하면서, 때때로 혁명적인 방법에 의하지 않고는 제거할 수 없는 악과 폐해가 과거에 있었음을 인정하면서, 종교개혁의 혁명적인 과정이 역사발전의 위대한 순간이었음을 인정했다.

미국 독립혁명에 관한 버크의 태도는 보수주의에 대한 우리의 막연한 선입견을 산산조각 내버린다. 그는 반란을 일으킨 자들은 아메리카 식민지인이 아니라 '영국 정부'라고 주장했다. 영국 정부는 영국인의 전통에 근거한 합당한 자유, '대표 없이는 과세 없다'를 배반했고, 식민지인은 영국인의 후예로서 자유를 사랑하는 영국인의 기질을 이어받았으므로 마땅히 영국적인 권리를 가진다는 것이다.

서강대 강정인 교수는 저서 <에드먼드 버크와 보수주의> 에서 버크가 한국현대사를 본다면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를 시뮬레이션으로 보여준다. 만일 5·16 쿠데타로 성립된 3공화국에 대해 어떤 세력이 혁명을 시도한다면 그 세력을 버크는 어떻게 평가할까? 10월 유신을 통해 성립된 유신정권에 대항하는 혁명은 어떻게 평가할까? 12·12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5공화국을 혁명으로 전복하려는 세력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할까?

답은 이렇다. 버크는 3·4·5공화국의 정권타도를 주장하는 혁명세력의 정당성을 인정해주리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세 공화국에서 집권 세력이야말로 '헌정 질서를 폭력에 의해 전복한 반도(叛徒)'이며, 그에 대항하는 세력은 '기존의 헌정 질서를 회복하고자 하는 보수적이며 방어적인 세력'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요컨대 박정희와 전두환은 '보수주의의 적'이라는 말이다.

한국의 보수는 죽었는가

〈프랑스혁명에 관한 성찰〉은 보수주의의 '경전'에 해당하는 문헌이지만 유감스럽게도 아직 한글 번역이 없다. 일본은 이미 19세기에 번역했다. 한국 사회의 황폐한 지식 인프라, 한국 보수의 지적 게으름을 동시에 확인하게 된다. 비유하자면 한국의 보수는 '한글 성경 없는 기독교'라고나 할까. 평생 버크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얼치기들이 보수의 탈을 쓰고 목청을 높이는 형국이다. 정통 보수의 목소리가 간간이 들리기는 하지만 아쉽게도 사이비들이 외쳐대는 함성 속에 파묻히기 일쑤다. 정녕 이 땅의 보수는 죽었는가.

박상익 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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