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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독살설은 허구?

입력
2009.02.11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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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론 벽파에 의한 정조 독살설은 오랫동안 역사연구자들, 작가들이 관심을 가져온 소재였다. 멀리는 정조의 총애를 받던 정약용이 <여유당전서> 에서 의혹을 제기했으며, 북한의 저명한 역사학자 최익한도 1955년 <실학파와 정다산> 이란 책에서 정조 독살설을 제기한 적이 있다.

정조 독살설이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진 계기는 1993년 발표돼 베스트셀러가 되고 영화로도 만들어진 이인화씨의 장편소설 <영원한 제국> 이다. 작가는 이 소설 말미에 쓴 '10문 10답'에서 "당시 역사적 정황이 실제로 긴박했고,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자란 나는 어렸을 적 어른들로부터 들은 정조 암살설을 (소설의) 모티프로 삼았다"고 밝혔다.

이후 역사연구가 이덕일씨가 대중역사서 <조선 왕 독살사건> (2005), <정조와 철인정치시대> (2008) 등에서 심환지, 정순왕후 등 노론 벽파에 의한 정조 독살 의혹을 강력히 제기했다. 그는 대왕, 대비라 하더라도 군주의 임종을 지킬 수 없는 당시의 예법을 무시하고 정순왕후 홀로 정조의 임종을 한 점, 정조의 어의(御醫) 중 한 명으로 정조의 병세를 악화시킨 죄로 순조 때 사형당한 심인이 심환지의 친척이었다는 점 등을 그 근거로 들었다.

그렇다면 정조와 심환지의 정치적 결탁을 보여주는, 새로 발굴된 정조의 편지들은 '독살설'을 수그러뜨릴 수 있을까?

이덕일씨와 이인화씨는 정적 간에도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의견을 교환하고 결탁하는 일은 고금을 불문하고 통상적으로 이뤄지는 것이라면서, 정조의 비밀 편지가 양자가 정치적 라이벌이었다는 사실과 독살설을 완전히 뒤엎을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덕일씨는 "정조의 편지는 사적인 내용이지만, 최대 정파인 노론 벽파를 통제하려는 정조와 라이벌이 '왕'으로 있는 상황에서 자파의 정치적 지분을 최대로 유지하려는 심환지 사이의 정치적 거래의 산물"이라며 "편지를 주고 받았다고 해서 두 사람의 사이가 좋았다고 보는 것은 일면적 해석이며, 정조 사후 심환지가 곧 영의정으로 등용된 점을 봐도 두 사람이 정치적 입장을 공유했고 따라서 독살설은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할 만한 근거는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인화씨는 "조선시대의 정치인들은 정권이 바뀌면 위리안치시키고 사약을 내릴 정도로 정적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했지만, 송시열과 남인의 영수들이 서로 문상을 한 데서 볼 수 있듯 일상적으로는 서로를 품격있게 대했던 독서인이자 교양인이었다"며 "정조가 죽기 전에 심환지와 극렬하게 대립했던 것은 모든 역사학자들이 동의하는 사실로서, 이 편지들이 노론에 의한 정조 독살 의혹을 완전히 해소하기 어렵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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