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금요일 오후 2시만 되면 전남 순천에선 아주 특별한 시민운동이 펼쳐진다. 시민 2,000여명이 각 읍ㆍ면ㆍ동을 구석구석 돌면서 불법 주ㆍ정차 안하기, 불법광고물 정비, 쓰레기 불법 투기 안하기, 노상 적치물 없애기 등 이른바 '4무(無)' 캠페인을 벌인다.
지난해 5월부터 "자랑스런 순천을 만들자"며 한 주도 거르지 않고 거리 캠페인에 나선 시민들이 최근엔 실천 항목을 하나 더 추가했다. 신용카드 이용금액의 0.2%가 내 고장 사랑기금으로 적립되는 '내 고장 순천 사랑카드 만들기'에 나선 것이다. 209개 시민ㆍ사회단체가 동참, 카드 가입 권유를 통해 내 고장 사랑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자랑스런 시민운동추진위원회 윤옥담 위원장은 "신용카드를 쓰면 장학사업과 이웃돕기 등 지역발전을 위한 일들을 할 수 있다는데 망설일 필요가 있느냐"며 "지역경제도 살리고 애향심도 키우는 내 고장 사랑운동을 확대시켜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순천 사람들의 고향 사랑은 각별하다. 고향을 그저 태어나서 자란 땅이 아닌 삶의 자양분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역 발전을 열망하는 이 곳 사람들은 이미 '내 고장 사랑운동'을 하나의 문화로 확산시켜 나가고 있다.
그 선봉에는 순천시 인재육성장학회후원회 김기태(순천시의원) 부회장이 있다. 지역 발전의 밑거름은 고향 후배들을 키우는 것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는 그는 장학기금 모금활동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정도다. 내달까지 한시적으로 내 고장 사랑카드에 가입하면 1매 당 1만원의 장학기금을 지원하는 혜택이 있다고 하자 누구보다 먼저 카드에 가입했다.
지난해 9월 장학회 결성의 산파역을 했던 그는 출향인사와 기업체, 시민단체, 노조 등을 직접 찾아 다니며 장학기금 모금을 위해 밤낮 없이 뛰어다녔다. 덕분에 출범 4개월 만에 회원 수가 1만1,000여 명을 넘어섰고, 모금액도 12억3,000만원에 달한다.
김 부회장은 "경제위기 등 어려운 시기일수록 사람에게서 희망을 찾는 노력을 해야 한다"며 "내 고장 사랑운동은 고향 후배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줄 수 있는 좋은 기회인 만큼 지속적으로 펼쳐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기업들의 고향 사랑도 뜨겁다. 9일 순청시청에서 열린 내 고장 사랑운동 결의대회에 참석한 순천산업단지 내 신재생에너지 전문기업 ㈜파루의 강문식 사장은 뿌듯함을 감추지 못했다. "지역을 위해 힘을 보태줬으면 좋겠다"는 말에 직원 100여명이 흔쾌히 내 고장 사랑카드에 가입하겠다는 뜻을 전했기 때문이다. 이날 직원들의 화답은 어쩌면 강 사장의 남다른 애향심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가 몸소 실천하고 있는 순천사랑 운동은 불우이웃돕기와 문화ㆍ예술ㆍ체육 분야 후원, 인재육성사업 등 셀 수 없을 정도다.
그는 "고향(순천) 없이는 회사도 없다. 고향을 생각하면 뭔가를 해주고 싶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의 고향은 전남 광양이다. 순천은 1993년 회사 설립 이후 생긴 제2의 고향이다.
그는 순천지역 매출액이 전체 매출액의 5%도 안 되는 상황에서 회사 운영을 위해 본사를 서울로 옮기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순천을 등질 수 없었다고 했다. "지방에서 기업하기 힘들다면서 왜 못 떠나느냐"고 물었더니 "뭔 소리여. 내 고향인데. 그리고 내 고장 사랑하는 일도 계속 해야 되는데요"라고 야단치듯 답했다.
순천시 대룡동 평화병원 박진실 원장의 고향도 순천이 아닌 광주다. 지난해 1월 광양에서 운영하던 병원을 넘기고 이 곳에 새로 터를 잡고 순천사람이 된 지 1년이 조금 넘었다. 직원 70여명과 함께 내 고장 사랑카드에 가입한 박 원장은 "고향에 갚아야 할 은혜의 일부일 뿐"이라고 말했다.
박 원장은 지난해 4월 병원 뒷마당에서 홀로 사는 어르신과 주민 등 2,000여명을 초청해 열었던 마을잔치를 올해도 열기로 하고, 가정형편이 어려운 노인환자 등에 대해서는 진료비와 간병료를 지원해 주기로 했다. 박 원장은 "순천은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제2의 고향이다. 내 고장 사랑카드 전도사로 나서 어려운 이웃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순천=안경호 기자 khan@hk.co.kr
■ 노관규 순천시장 인터뷰 "애향, 마음보다 실천이 먼저죠"
"순천은 제 꿈을 이루게 해준 곳입니다. 그러니 고향에 보답하는 건 당연하죠."
노관규(49) 전남 순천시장이 '내 고장 사랑운동'에 임하는 각오는 남다르다. 그는 "고향을 생각할 때 그저 아련한 향수만 떠올릴 게 아니라 고향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실천하는 게 중요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한?
사실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현재 순천 토박이가 전체 인구 28만 명 중 30%도 채 안 되는 도시 특성에 기인한 측면이 크다. 실제 그가 태어난 곳도 순천이 아닌 전남 장흥이다.
그는 "전국에서 살기 좋은 10대 도시에 2년 연속 선정된 순천은 교육ㆍ문화ㆍ주거 등 정주여건이 뛰어나 나처럼 이 곳을 제2의 고향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며 "이젠 이들이 삶의 밑천이 된 새 고향, 순천을 위해 힘을 보태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그가 내 고장 사랑운동에 적극 동참하겠다고 다짐한 배경에는 바로 '보은(報恩)'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특히 "내 고장 사랑운동이 순천의 발전을 위한 시민적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있다"며 "이 같은 애향심을 하나로 모아 순천을 전국 최고의 도시로 만들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노 시장의 고향 발전 프로젝트는 이미 시작됐다. 지난해 5월부터 매주 한 차례씩 순천시민들이 벌이고 있는 '자랑스런 시민운동'에 내 고장 사랑카드 가입운동을 접목시킨 것이다. 그는 "내 고장 사랑카드는 지역을 살리는 카드가 될 것"이라며 "내년 말까지 기업체와 출향인사, 시민 등을 대상으로 1만여명을 가입시킬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는 또 고향에 대한 애정은 있지만 마땅히 도울 방법을 몰라 답답해 했던 출향인들을 위해 내 고장 자랑거리 체험운동과 지역 특산품 애용운동, 내 고장 방문하기 운동도 확산시켜 나갈 계획이다.
노 시장은 "내 고장 사랑운동이 범 국민운동으로 확고히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자신의 고향에 대한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 개발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 재경 향우회를 비롯한 출향인사와 기업체, 시민들과 긴밀한 협조체계를 구축할 것"이라고 말했다.
순천=안경호 기자 khan@hk.co.kr
■ 남녀노소…사방팔방서 '뜨거운 열기'
'내 고장 사랑운동'이 불붙고 있다. 한국일보와 국민은행이 만든 '내 고장 사랑카드'는 하루 가입자가 500명에 육박한다. 유명인사에서부터 평범한 시민들까지 폭 넓은 계층에서 동참하고 있고, 지방자치단체와 기업들의 참여 열기도 뜨겁다.
내 고장 사랑카드 가입자는 9일 현재 3,222명. 정식 출시가 1월 19일이니 3주일 만에 기록적인 실적을 올린 것이다.
특히 놀라운 것은 증가 속도. 초기엔 하루 가입자가 100명 내외더니 지난달 말 200명, 이달 초 300명을 넘었고, 9일에는 471명까지 치솟았다.
김형오 국회의장, 이윤성 문희상 국회부의장, 박계동 국회 사무총장,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 정세균 민주당 대표가 이미 카드를 발급받았고 조만간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 민주당 원혜영 원내대표도 카드에 가입할 예정이다.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등 경제인들도 동참 의사를 밝혔다. 사회 저명인사들 사이에 내 고장 사랑운동에 대한 공감대가 넓게 퍼지고 있는 것이다.
참여 지자체도 계속 늘고 있다. 이미 경기 군포시 양주시 의왕시 파주시, 강원 원주시, 충남 부여군, 전남 순천시, 전북 부안군, 경남 의령군이 운동 출범 때부터 동참했고 대구시, 인천 강화군, 경기 고양시, 경남 하동군이 이달 중 내 고장 사랑운동 선포식을 가질 계획이다. 지자체들의 참여 문의도 잇따르고 있다.
기업들은 현재 모두 70개가 참여하고 있다. 대한항공 등 다른 기업들도 동참의 뜻을 밝히고 세부 사항을 협의 중이다.
내 고장 사랑카드는 사용한 금액의 0.2%가 자신이 지정한 지역에 기탁돼 고장발전기금으로 쓰이는 '초간단 고향사랑 실천 카드'다. 고향 사랑에도 도움이 되지만 SK주유소 ℓ당 60원 할인, 전국 학원 최대 5% 할인, 주요 패밀리레스토랑 10% 할인, 덕산 스파캐슬 40% 할인 등 국내 최고 수준의 혜택도 동시에 누릴 수 있다.
이은호기자 leeeun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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