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리(Marley)는 레게 뮤지션 밥 말리의 이름을 딴 개의 이름이자, 이 개의 주인인 미국 신문사 칼럼니스트 존 그로건의 칼럼 소재이자, 2006년 발행돼 40주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른 그로건의 에세이 <말리와 나> 의 주인공이다. 말리와>
말리는 사람으로 치면 불치의 주의력결핍 및 과잉행동장애(ADHD)를 앓은, 사고뭉치 개였다. 사냥한 새를 물어오는 순혈 래브라도 리트리버종(種)이라는 족보가 무색하게 한번 입에 문 것은 결코 내놓지 않았다. 40㎏이 넘는 위협적인 덩치와 근육질 체력으로 집안의 가구와 벽을 뜯어먹었고, 산책길엔 온동네 애완견의 대소사에 간섭하느라 목줄 쥔 주인을 이리저리 끌고다닌 상전이었다. 천둥번개를 무서워하고, 머리는 나쁘고, 도통 훈련되지 않는 그런 개였다.
존 그로건은 말리를 키우면서 감당해야 했던 수리비와 보상비가 요트라도 살 수 있을 정도였다고 에세이에서 밝힌다. 하지만 그는 요트 대신 말리를 택했다. "문간에서 하루종일 나를 기다리는 요트가 몇 척이나 되겠느냐"며. 그래서 말리는 소유물이 아닌 가족이며, 영화 '말리와 나'는 '가족을 이루고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관한 작품이 된다.
둘 다 신문기자였던 존과 제니 부부는 여느 젊은이들처럼 열정적으로 사랑에 빠졌고, 불안감 속에 첫 아이를 가졌고, 아이 키우는 고통과 즐거움을 만끽하며 세 아이를 길렀다. 돈에 쪼들리고, 집을 늘리고, 남편은 승진과 이직을, 아내는 아이를 보러 퇴직을 한다. 강아지 말리가 늙어 죽을 때까지 13년 동안 일어난 일이다. 말리가 늙고 힘이 빠지는 사이 존은 제니와 "말리를 갖다버리라"며 싸우기도 하고, 자신이 쓴 칼럼에 질리고 지치기도 하고, "내가 선택한 일이지만 생각보다 힘들다"고 토로한다.
기상천외한 말리의 사고에 웃음을 터뜨리다 어느덧 단점까지 포용하고 삶을 나누는 것이 가족의 행복임을 자각하게 된다. 그 행복은 이미 내 곁에 있는 줄 모르다가 새삼스럽게 돌이켜 보아야만 아는 경우가 많다. 존이 평소 부러워하던 독신의 잘 나가는 동료기자가 존의 단란한 가족사진을 보면서 "성공했네"라고 말하는 순간이 그런 경우다.
오웬 윌슨과 제니퍼 애니스톤이 존과 제니 역을 더 없이 자연스럽게 연기한다. 말리 역을 번갈아 연기한 총 22마리 개들은 망나니짓을 하도록 철저히 훈련된 개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데이빗 프랭클 감독. 19일 개봉, 12세 이상.
김희원 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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