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수출이 무너지는 소리가 벼락같다. 수출이 거의 전부인 한국 경제에서 수출이 내려앉으면 우리에게는 다른 대안이 없다. 거의 모든 품목, 모든 지역에서 1월 수출은 감소하였고, 그나마 양호한 실적을 보인 선박수출은 오래 전에 주문받은 것이 통관된 것이다. 그런데 우리와 세계 시장에서 늘 경합하는 일본, 대만은 더 나쁘다고 한다. 다행히 우리는 환율에서 유리하고 품질도 어지간하기에 세계 경제의 엄동설한에도 외국 바이어들의 발길이 멀어지지 않고 있다.
경제 좌우할 생존게임 치열
세계 각국이 경기부양책을 쓰면서 전 세계 GDP의 12%까지 돈을 푼다고 하지만, 아직 세계 시장의 아랫목조차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시장이 돌아오는 것이 이르면 올 하반기이고, 늦으면 2∼3년 뒤라고 보는 관측도 있다. 물론 지금의 세계 경제위기가 돈이 없어서 생긴 문제는 아니다.
돈이 너무 많아서 세계 금융계가 파생상품이란 탐욕스러운 돈놀이를 하다 생긴 문제다. 거기에다 각국 중앙은행들이 불 끄는 호스로 오히려 돈을 뿌려 대고 있어 의외로 일찍 인플레를 동반하는 경기회복이 오리라는 의견도 있지만, 누구도 경기회복 시기를 예측하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당분간 공포와 불안의 심리가 지배하면서 시장은 극도로 위축되고 그 안에서 경쟁은 격화되고 각국은 음으로 양으로 자국산업 보호조치를 취하게 될 것이다. 이런 가운데 강추위를 견디지 못하는 기업은 하나 둘 퇴출될 것이다. 벌써 고객과 시장을 경쟁기업에 넘겨주기 시작하는 퇴출 기업이 나오고 있다. 이른바 치킨게임의 시작이다. 여기에서 살아 남으면 경기 회복 후 확실한 승자의 보상이 따를 것이다. 그래서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세계시장의 윗목까지 온기가 돌 때를 기다리며 끝까지 버텨야 한다.
우리 수출기업은 10년 전 혹독한 시련을 겪으면서 생긴 내성과 극복력을 갖고 있다. 미련하다 싶을 정도로 이익이 나면 빚 갚기에 힘쓴 덕에 세계에서 가장 낮은 부채비율이 지금 큰 효자 노릇을 한다. 재무구조가 건전하니까 당장 영업적자가 나더라도 생산 감축만 조금 할 뿐이다. 문을 닫고 사람을 내보내고 하청 대금을 주지 못하는 상태는 아니다.
또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고환율의 뒷바람도 받고 있다. 한국에 투자한 외국인 투자업체도 아무런 동요가 없다. 현재와 같은 불황이 오래가면 그간 현금이 축적된 아시아권의 일본과 한국, 그리고 대만 등 화교권 기업만이 생존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우리 수출이 지금의 한파를 버텨내고 시장과 고객을 지켜낼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기대를 한다.
지난 1월은 14년 만에 처음으로 파업이 없었던 달이라고 한다. 이처럼 우리 수출이 버틸 수 있도록 노조도 참고 도와야 한다. 정치권도 한마음으로 밀어주어야 한다. 정부는 뛰어난 기술력과 창의성을 지니고서도 키코에 발목 잡혀 있거나, 주문을 받고도 담보 부족으로 발을 동동 구르며 자금 융통에 애를 먹고 있는 중소기업들이 대박을 터뜨리도록 도와야 한다. 무역금융을 확대하고 수출보험도 크게 늘려, 기업이 마음 놓고 수출할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국가적 '총력수출' 체제로
기업 역시 중국 인도 브라질 등 세계 시장 구석구석을 파고들어야 한다. 경기부양책으로 커지는 각국의 조달시장, 소비주체로 떠오르는 이슬람 여성 시장, 새롭게 깨어나는 미개척 아프리카 시장과 같은 평상시에는 생각하지도 않았던 블루슈머(Bluesumer) 틈새시장도 새롭게 찾아 나서야 한다. 그래서 정부와 기업, 그리고 KOTRA 등 수출지원기관이 수출이라는 한 배를 탄 공동운명체로서 총력수출 마케팅체제로 들어가야 한다.
국가와 기업을 가리지 않고 전 세계가 체력전에 돌입했다. 우리 수출은 승자의 위치에 올라야 한다. 지금은 우리 수출이 힘든 싸움을 버틸 수 있도록 모두가 힘을 모아주어야 한다.
조환익 KOTRA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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