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미국산 쇠고기 파동에 불을 붙인 TV 영상이 지금도 생생하다.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해 연신 다리를 꺾고 쓰러지는 소를, 전기 충격을 가하거나 때려서 도살장으로 끌고 가는 장면이다. 죽음조차 편히 맞지 못하는 소에 대한 연민은 애초에 이 홍보용 영상을 제작한 동물보호 단체의 뜻과도 잘 들어맞는다. 그러나 흔히 '광우병'으로 불리는 '소 해면상 뇌증(BSE)'에 걸린 소가 힘없이 쓰러지는 모습을 익히 봐 온 시청자의 눈에는 영락없는 '광우병'소였다. 그런 소가 도축돼 다른 쇠고기와 섞일 수 있다는 불안도 널리 퍼졌다.
■'다우너 소(Downer Cow)'라는 미국 농민어가 소개되기도 했지만, 이 말이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된 결정적 계기 또한 다름 아닌 BSE라는 점에서 웃자란 오해와 불안을 씻어내지는 못했다. 다우너 소는 말 그대로 주저앉는 소를 가리킨다. '보행 불능(Non-ambulatory) 소'라고도 부른다. 원인은 다양하다. 골반이나 장골의 골절, 심한 관절염은 물론이고 다리 근육이나 신경의 손상, 유선염이나 자궁염, 혈액 속의 마그네슘이나 칼슘 부족, BSE를 포함한 각종 뇌신경계 질환 등이다. 난산의 결과로서 겪는 예도 많다.
■전통적으로 농가에서는 이런 상태의 소를 그대로 살려두기보다 도살하는 것이 인도적이고, 결과적으로 비용도 줄일 수 있다고 여겼다. 농촌에서는 다우너 소를 잡은 고기를 값싸게 동네에 돌려 한바탕 쇠고기 잔치를 벌이곤 했다. 법령이 소의 임의 도축을 금지하면서도 부상이나 난산, 산욕마비, 급성 고창 등 네 가지 원인에 의한 다우너 소는 농가에서 잡을 수 있도록 예외를 둔 것도 이런 전통과 이어져 있다. 전염병 차단 등을 위해 수의사의 확인은 거치도록 했다. 그런데 머잖아 다우너 소도 도축장 밖 도살은 완전 금지될 전망이다.
■최근 부산에서 41마리의 다우너 소가 불법 도축돼 유통된 사건을 계기로 당국이 축산물가공처리법 개정에 나섰다. 도축장 밖에서의 긴급 도축이 농가 경제에 별 보탬이 되지 않고, 전통조차 유지되기 어려운 농촌 현실이 고려됐을 법하다. 이번 불법 도축 사건에서 농가에 건네진 돈은 한 마리에 고작 10만~20만원이었다. 동네에서 잡아 싸게 나눠도 100만원 이상은 건질 수 있지만 완력과 기술이 필요한 도살ㆍ해체 작업을 할 사람도, 소 한 마리를 후딱 해치울 입도 동네에 없었던 셈이다. 다우너 소의 영상 위로 쓸쓸한 농촌 풍경이 새로 겹친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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