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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인터뷰] 정몽준 한나라당 최고위원·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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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인터뷰] 정몽준 한나라당 최고위원·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

입력
2009.02.11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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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한축구협회장의 짐을 벗은 정몽준 한나라당 최고위원을 지난 6일 국회 의원회관 의원실에서 만났다. 한결 여유를 찾은 모습이었다.

재임기간을 돌아볼 때는 아쉬움보다는 강한 자신감이 더 묻어났다. 그는 1993년 대한축구협회장에 취임한 뒤 16년간 영욕의 세월을 보냈고, 2002년 월드컵 유치, 축구 전용구장 건립, 동아시아대회 창설 등 3대 공약을 모두 지켰다.

히딩크식 '대화의 리더십'으로 시작된 축구 이야기는 어느덧 '소통의 정치학'으로 갈무리되고 있었다. 그는 "대화가 가장 필요하지만 제일 대화가 없는 게 우리 정치판이다"고 꼬집었다. 차기 대권을 염두에 둔 듯 최근 여의도에 정책연구소 '해밀을 찾는 소망'을 설립한 것도 '소통'이 필요해서 였다.

그는 항간의 소문을 의식해 조중연 축구협회장을 배려하려는 듯 국내축구에 관해서는 말을 아껴 앞으로의 행보가 정치쪽으로 무게중심이 기울어진 듯 보였다.

대담=여동은 스포츠팀장, 김광덕 정치부 차장

- 최근 16년간 맡아 왔던 대한축구협회장직을 그만두셨는데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미련이 남을 법도 한데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4년 전에도 그만두려고 했었으니 당초 생각보다 더 오래 머문 셈입니다. 협회장 자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도 많은데 16년이나 있다가 명예롭게 은퇴했으니 큰 축복입니다."

- 퇴임 인터뷰에서 '대표팀 감독은 독배를 마신다고 하지만 협회장도 어려운 자리였다'고 했습니다.

"협회장직도 공직이고, 모든 공직에는 찬사와 비난이 항상 따르게 마련입니다. 93년 처음 협회장이 되고 카타르에서 열린 94년 미국월드컵 최종예선에서 우리가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면 협회장에서 사퇴했을 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북한을 꺾어도 일본이 이라크를 이기면 월드컵 본선 진출이 물건너가는 상황이었는데 다행히도 이라크가 막판에 헤딩 동점골을 넣어 2-2가 되는 바람에 우리가 티켓을 따냈습니다.

그만큼 협회장은 굉장히 힘든 자리입니다. 월드컵 본선에 못 간다고 축구협회장직을 그만둬야 된다면 아시아의 40여 개국 축구협회장 중 본선에 탈락한 나머지는 매번 바뀌지 않겠습니까.(웃음)"

- 아쉬운 일은 없었습니까.

"2004년 아테네올림픽 8강이 가장 아쉽습니다. 박지성과 이영표만 있었다면 결승전에 갈 수도 있었습니다. 그 때 히딩크 감독이 박지성과 이영표를 보내주지 않았는데 만약 제가 히딩크 감독을 만나 설득했으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 16년 전에 비해 한국 축구가 많은 발전을 이뤘습니다.

"예전엔 축구협회 사무실도 아주 작은 방 하나였는데 전무, 부회장 자리만 있고, 회장 자리조차 없었습니다. 그 당시 협회의 1년 예산이 30억이었는데 지금은 700억원 규모입니다. 예전엔 동대문운동장이었지만 지금은 세계적인 경기장이 곳곳에 들어서 있습니다. 특히 아시아에서 독일과 브라질을 모두 이긴 팀은 현재 우리나라밖에 없을 겁니다.

국내에서 열린 친선경기에서 99년 브라질을 1-0으로, 2004년 독일을 3-1로 이겼습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축구는 투자에 비해 큰 성공을 거둔 산업입니다. 일본만 봐도 등록된 선수만 우리나라의 20~30배에 달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일본 축구보다 못할 게 하나도 없습니다."

- 축구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것 같습니다.

"축구는 참 매력이 있습니다. 월드컵 예선과 본선을 치를 때면 매 경기에 대한 박진감이 대선 개표 방송 못지 않습니다. 모든 경기가 다 손에 땀을 쥐게 합니다. 또 축구는 내셔널리즘을 먹고 사는 운동입니다. 전쟁하듯이 축구를 하면서 가장 국제화되어 있습니다. 한 영국 기자는 축구는 전쟁과 체스와 발레를 묶어놓은 것 같다고도 했습니다.

10년 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유럽축구연맹(UEFA)컵 경기를 본 적이 있습니다. 상대가 독일의 바이에른 뮌헨이었는데 당시 바르셀로나 시내에 있는 독일 팬들만 3만명이었습니다. 이런 부분이 유럽을 하나의 경제공동체, 정치공동체로 묶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 축구는 A매치에 국한된 냄비 인기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우리는 내셔널리즘이 너무 강한 측면도 있습니다. 2002년 월드컵 유치를 놓고 일본과 경쟁을 할 때도 내용을 몰라도 일본과 경쟁하니까 지면 안 된다는 식입니다. 스포츠를 즐기게 되면 이기든 지든 재미가 있습니다. 결과에만 집착하면 장기적으로 축구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 2002년 월드컵은 일본이 단독 개최할 수 있었던 것을 한국이 뒤늦게 가세하면서 공동개최로 급선회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 월드컵 ??신청은 제 취임과 관계없이 이미 예정됐던 과제였습니다. 하지만 월드컵 유치를 추진할 당시 저는 국회의원이었고, 아버지(고 정주영 회장)가 대선에서 떨어졌던 터라 전체적인 여건이 우호적이지 못했습니다. 제가 정치적인 환경을 개선하려고 되지도 않을 일을 한다고도 했고, 대통령이 되려고 그런다는 비아냥도 많았습니다.

그 때문에 월드컵 유치를 추진하지 말까 고민도 했습니다. 학생이라면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게 당연한데 욕심이 많아서 그렇다고들 하면 답답하지 않겠습니까. 공동개최가 되어서 다행이지, 만약 실패했다면 처음부터 안될 줄 알면서 했다고 비난했을 겁니다."

- 최근 대한축구협회가 2018년이나 2022년 월드컵 유치의 뜻을 밝혔습니다.

"2018년은 유럽, 2022년은 아시아에서 열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현재 아시아 신청국 5개국 가운데 호주 일본 한국이 가장 유력합니다. 최소한 3분의1의 가능성이 있는 셈인데 만약 유치 신청을 하지 않는다면 직무유기가 아닙니까. 내년 연말에 개최국이 결정되는데 관심과 노력을 할 가치가 있는 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

- 정 최고위원의 '복심'으로 통하는 조중연씨가 대한축구협회장에 당선됐습니다.

"조 회장이 복심이라는 건 지나친 표현입니다. 조 회장은 청소년대표 선수로 뛰었고, 프로 구단 감독도 맡았고, 제 생각으로는 축구인 중에서 가장 행정을 잘 할 수 있는 분입니다.

사회 전반적인 이해도 높고 자신의 의사를 정리해서 발표하는 능력도 뛰어납니다. 조 회장이 내실 있게 잘 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단 제가 2011년까지 FIFA 부회장을 맡은 만큼 국제관계 도움이 필요하다면 당연히 도와야겠지요."

- 가장 기억에 남는 축구 선수가 있다면요.

"박지성은 유럽에서 축구는 물론 정치분야까지 포함해서 아시아인 중에 가장 많이 알려진 이름입니다. 세계 최고의 구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에서 주전으로 뛴다는 것만 해도 대단한 겁니다.

2006년 독일월드컵을 앞두고 평가전을 치렀던 노르웨이만 해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연중 티켓을 보유한 사람만 10만명이 넘습니다. 홍명보도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인품도 있고 리더십도 있어 선후배들이 다 따르죠. 연말 자선경기에 현역 선수들이 출전하는 게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 가장 기억에 남는 감독은 누구입니까.

"히딩크와 아드보카트 같은 세계적인 감독과의 인연은 엄청난 행운입니다. 특히 히딩크는 축구의 지혜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선수들에게 기술이나 전략도 가르쳤지만 기본적으로 요구한 건 바로 대화였습니다.

경기장에서도 서로 이름을 부르게 했고, 밥도 같이 먹게 했습니다. 외국인 선수는 식당에서 감독 코치가 보이면 툭툭 치고 살갑게 인사를 하는데 우리는 그런 경우 선수들이 빙 돌아서 피해 갑니다.

히딩크와 아드보카트가 지적한 게 바로 그런 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대화가 가장 필요하지만 제일 대화가 없는 게 우리 정치판입니다. 최근 정치판에서 소통이란 단어를 많이 쓰는 데 사실 소통은 상당한 테크닉과 노하우를 필요로 합니다. 분위기와 여건도 형성되어야 하고, 평소에 연구도 하고 관심을 가져야 하죠."

- 퇴임하면서 'FIFA 회장 선거 출마를 고민하고 있다'고 했는데요. FIFA의 어떤 부분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봅니까.

"공약으로는 회장 임기는 한 두 번 정도로 제한하는 걸 고려해보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아벨란제 전 회장도 FIFA를 많이 키웠지만 24년간 재임했습니다. 현 블래터 회장도 98년부터 연임하고 있습니다."

- FIFA 회장에 출마하겠다는 뜻인가요. 2011년에 FIFA 회장 선거가 있고, 2012년에 대선이 있습니다. 대선 출마 의향은 어떤가요.

"FIFA 회장에 출마하면 국내 정치는 어떻게 하나요?(웃음) 둘 다 출마할 수는 없습니다. FIFA 회장도 명예직이고 국가 위상을 높일 수 있는 자리입니다. 좀 더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 지난해 아산정책연구원에 이어 최근 여의도에 정책연구소 '해밀을 찾는 소망'을 설립한 것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대선 준비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해밀을 찾는 소망'은 사실 좀 늦은 감이 있습니다. 그 동안 협회장을 하면서 한나라당 최고위원으로서 국정에 중요한 의견을 발표하기 위해 신문의 칼럼이나 사설을 보면서 생각을 정리했지만 수많은 이슈를 다루기에 부족함을 많이 느꼈습니다.

최소한 정책의 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 사회도 대화의 양이 부족하지만 한나라당 내에서도 절대적인 대화의 양이 부족합니다. 대학과 현실세계의 중간역할을 하는 게 바로 연구소입니다. 전문가와 토론회도 자주 열고, 우리나라 각종 연구소나 학회 등이 소통할 수 있는 장이 되도록 할 계획입니다."

- 최근 축구협회장직도 그만두고, 한나라당에 입당하고, 울산에서 서울 동작구로 지역구를 옮기는 등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어느 지역구든 똑같이 모두 중요합니다. 다만 서울은 우리나라 수도이자 정치도시라 그런지 확실히 정치판에 들어왔다는 느낌이에요. 울산에서 국회의원할 때는 주민들과 푸근하게 지냈다고 한다면 서울에서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얼마 전 미국 방문시 한국 정치인 중으로는 오바마 대통령을 취임 이후 처음으로 만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굉장히 깨어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간 자리는 미국 정재계 고위인사 모임인 '알팔파 클럽' 만찬이었는데 그런 전통이 있다는 게 우리와 다르더군요. 미국은 민주당과 공화당으로 나뉘어 있어도 민주적인 제도에 대한 기본적인 합의가 깔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여야 정당은 그런 인식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야당이 왜 길거리 시위에 참여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세계는 경제 위기로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큰 도전을 맞고 있습니다. 미국의 큰 금융기관도 공적자금에 기대고 시장경제원리가 무너지고 정부에 의존하는 군상들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여야가 최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할 때입니다."

- 축구 농구 골프 등 만능 스포츠맨으로 유명한데 건강 유지 비결이 있나요.

"저는 워낙 운동을 좋아합니다. 운동을 하다가 뼈가 부러진 것만 다섯 번입니다. 물론 스포츠가 중요한 이유는 근육을 키워주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인생에서 중요한 페어플레이를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페어플레이는 교실에선 배울 수 없죠. 스포츠를 통해 배우는 페어플레이 정신이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정리=오미현기자 mhoh25@hk.co.kr

사진=최종욱기자 ju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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