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이 실행되지 않은 대기 상태의 소음도가 30데시벨(㏈)을 넘는군. 주변 소음을 감안하면 권장수치(30㏈) 이하로 떨어지겠지만, 그래도 만족할만한 수치는 아닌 것 같아. 다시 한번 측정해 보고, 결과치를 연구팀에 통보하자."
경기 반월공단에 있는 삼보컴퓨터 본사 내 소음측정실을 갖춘 '신뢰성 랩실'. 저전력 신제품 노트북 출시를 앞두고 사전 테스트가 한창인 가운데 품질관리팀 장원철 대리가 동료와 주고 받는 대화가 사뭇 진지하다.
이곳은 1980년 설립된 컴퓨터(PC) 전문 제조업체 삼보컴퓨터의 심장부다. 이 회사가 올해 핵심전략으로 표방한 '고객가치 극대화'를 위해 생산 현장에서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운 슬로건은 '저전력 고효율 PC 생산'.
삼보컴퓨터는 이를 달성하기 위해 제품 양산 전의 사전테스트 단계부터 각 생산라인은 물론, 완제품 출시 후 재활용에 이르기까지 전 공정에 걸쳐 '그린IT 전략'에 기반한 시스템을 가동 중이다.
삼보컴퓨터가 최근 '저전력 고효율 PC 생산'을 위해 주력하는 부분이 바로 '저소음'. 회사 관계자는 "최신 냉각 공법을 적용한 설계로 열을 효율적으로 발산, 냉각 팬이 적게 돌도록 함으로써 전력 소모를 줄이면서도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는 '웰빙 PC' 제작에 힘을 쏟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PC 소음에 대한 규정은 없지만, 삼보컴퓨터는 자체 기준을 통해 저소음 PC 생산에 노력하고 있다. 권중규 품질관리팀장은 "소음을 낮추기 위해 초대형 화면을 갖춘 일체형 PC에는 별도 제작된 듀얼 냉각 팬과 알루미늄보다 열 전도율이 좋은 구리 소재가 추가된 히트모듈을 사용, 중앙처리장치(CPU) 칩셋 등 주요 부품의 열 배출 효율을 극대화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대기전력 최소화도 삼보컴퓨터 그린IT 전략의 핵심이다. PC를 사용하지 않을 경우 전원 자동 차단장치가 장착된 소프트웨어가 절전모드로 진입, 불필한 전원의 낭비를 막고 있다. 또 PC에서 문서 작업이나 인터넷 서핑 등 CPU에 부하가 적은 작업을 할 때는 CPU의 동작 속도를 자동으로 낮춰 저전력 상태가 유지되도록 한다.
앞서 삼보컴퓨터는 2006년 7월 초미니 PC에서 팬 하나로 CPU와 칩셋 등 여러 핵심 부품을 한꺼번에 식혀주는 저전력 기술을 선보여 대한민국 기술대상 특별상을 받았다. 이 같은 대기전력 최소화 시스템은 삼보컴퓨터가 생산하는 데스크톱 PC를 포함해 노트북과 일체형 PC, 모니터, 복합기 및 프린터 등 전 제품에 적용된다.
삼보컴퓨터가 저전력 실현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은 녹색성장과도 관계가 있다. 2007년 시장조사기관 가트너에 따르면 IT산업은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2%를 점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이는 전 세계 항공사에 소속된 여객기들이 배출하는 양과 비슷한 수준이다. 문제는 주요 IT기기 가운데 PC 및 모니터가 전체 IT산업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40%를 점할 정도로 오염물질 배출이 심각하다는 점이다. 이는 서버(23%)와 유선통신(15%), 모바일통신(9%), LAN 및 사무실 통신(7%), 프린터(6%) 등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크게 압도하는 것이다.
최소 에너지로 최대의 생산 효과를 얻어내기 위한 노력은 생산라인에서도 계속된다. 지난해부터 기존 라인을 재배치하고 효율성 높은 방향으로 개조, 월 2,000~3,000대 규모의 PC 생산 능력을 1만대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또 생산라인의 형광등을 기존 40와트(W)급 기계식에서 32W급 전자식으로 교체, 30%에 가까운 절전 효과를 얻었다.
삼보컴퓨터는 행정안전부가 중점 추진 중인 '녹색 정보화사업' 가운데 중고 PC 재활용 부분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PC의 핵심 부품인 CPU와 메인보드를 구입 2년 후 소비자들에게 무상 업그레이드 해줌으로써 PC 사용기간을 늘리는 한편, 하드웨어의 수명기간도 늘리고 있다.
아울러 업그레이드 후 수거된 CPU 메인보드는 렌탈 사업이나 개발도상국 수출 등에 활용함으로써 최적의 자원 절감 효과를 거두고 있다.
생산관리팀 김영회 부장은 "앞으로도 그린IT 전략에 초점을 맞춰 소음이 적으면서도 불필요한 전력 소비를 획기적으로 줄인 IT제품들을 선보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 김영민 삼보컴 대표이사/ "그린 IT 제품만 수출할 날 곧 올 것"
"그린IT는 이제 생존을 위한 필수 요건입니다."
삼보컴퓨터 김영민(43) 대표이사(부회장)는 "유럽연합(EU)과 일본 등 선진국과 IBM,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IT 기업들이 앞 다퉈 그린IT 분야에 대한 투자를 늘리며 신성장동력 찾기에 나서고 있다"며 "그린IT 분야에서 상대적으로 초기 단계에 머물고 있는 우리나라도 중ㆍ장기적인 로드맵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린IT는 글로벌 시장에?또 다른 생존 경쟁의 장을 형성할 것이라는 게 그의 판단이다. 이에 대비하려면 철저한 조사와 투자를 바탕으로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성장 전략을 짜는 게 중요하다.
그는 특히 "머지 않아 IT 제품은 물론이고 모든 산업 제품들이 그린IT에 기반하지 않고선 수출 자체가 불가능한 날이 올 것"이라며 "수출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우리 입장에선 그린 비즈니스를 통한 경영혁신을 통해 국가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글로벌 조류인 그린IT 시대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려면 국민들의 인식 전환도 중요하다. 김 대표는 "우리나라의 경우 IT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어 그린IT를 블루오션 창출의 기회로 활용할 수 있는 유리한 여건을 갖고 있다"며 "정부도 부분적인 기술 개발이나 금융 지원보다는 그린IT 제품 소비가 활성화할 수 있도록 사회적인 분위기 조성에 더 많은 힘을 기울여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정부 정책 방향은
정부는 에너지 절감과 온실가스 감축, 환경 규제 강화 등 글로벌 환경 변화에 대한 대응 수단으로 IT의 역할을 주목하고 있다.
정부는 '저탄소 녹색성장을 선도하는 그린IT 산업 구현'이라는 비전 아래, ▲2015년까지 IT 분야의 전력소비 6조781억원 절감 ▲그린IT 세계시장 선점 및 녹색환경(산업기반) 구축 등을 추진 목표로 내걸었다.
이를 위해 우선 세계시장 선점이 가능하거나 단기간에 국내 산업 성장을 유도할 수 있는 그린IT 분야를 집중 육성한다는 전략이다. PC와 인터넷데이터센터(IDC) 등 에너지 소비가 많은 IT 기기의 고효율화를 위해 에너지 절감 핵심기술 개발에도 박차를 가한다는 방침이다.
IT산업은 2006년 전체 산업 전력소비량의 16.0%(2만8,000GWh)를 점할 만큼 에너지 소비가 많다. 특히 TV와 셋톱박스 등 국내에 보급된 약 3억대의 전자기기가 연간 대기 전력으로 낭비하는 규모만 5,000억원에 달한다.
정부는 또 폐기 IT제품에 따른 환경오염 예방을 위해 u-산업단지 조성 및 제품 관리를 통한 환경보호 운동도 병행할 방침이다. 소비자 등이 자발적으로 에너지 절감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동기 부여와 참여공간 확대도 추진한다.
아울러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고효율 제품을 생산하도록 에너지 효율 등급제를 개선하는 한편, 소비자가 그린IT 정책과 녹색성장 비전을 함께 공유할 수 있도록 웹사이트 구축을 통한 정보 제공도 확대하기로 했다.
허재경 기자 ric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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