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해서 또는 여자이기에 배움에 목말라 울어야만 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배울 수 있다는 일념 하나로 힘든 길을 선택에 이 영광의 자리에 왔습니다."
봄을 재촉하듯 가랑비가 내린 10일 오전 서울 송파구 장지동 한림중ㆍ실업고등학교 운동장. 재학생의 송사에 이어 한 졸업생의 답가가 끝나자 '늦깎이' 주부 학생들의 눈에는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가난과 여자'라는 설움 때문에 학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던 그 옛날 '우리네 어머니'인 주부 만학도 274명은 이날 마련된 특별한 졸업식에서 그렇게 눈물 한줌으로 그간의 서러움과 고난을 훨훨 씻어 내렸다.
"잘 했어, 고생했어" 눈시울을 붉힌 졸업생들은 서로에게 축하를 건넸다. 특히, 졸업생 가운데 181명은 대학에 진학하는 겹경사도 맞았다.
이들에게 이날은 '평생 잊을 수 없는 날'이 됐다. 지긋지긋한 가난 때문에, "여자가 무슨 공부냐"는 괄시와 구박 등으로 학업을 중도 포기했지만 이들은 배움에 대한 열정만은 꺾지 않았다.
중학교 1학년 때 집안이 기울어 학업을 포기해야 했던 나순심(48ㆍ강남구 수서동)씨. 남편이 1998년 교통사고로 뇌출혈을 일으켜 몸 져 누운 뒤 파출부, 아파트 청소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했다. 당장 먹고 살 길이 막막했기 때문이다.
선천적으로 가슴이 심장을 압박하는 희귀병을 앓고 있는 19살 아들의 뒷바라지도 언제나 그의 몫이었다. 신구대 패션디자인과 09학번 입학 예정인 나씨는 "남편 병간호하는 게 힘들어 우울증까지 왔지만 하루 5시간의 학교 수업이 즐거워 이겨낼 수 있었다"면서 "대학 졸업 후 학력과 경력을 갖춰 관련 분야에서 돈을 버는 게 목표"라며 환하게 웃었다.
장안동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주영희(52)씨도 억척이다. "오후반 수업을 끝내고 5시부터 12시까진 가게에서 일하고, 밤에는 숙제를 하면서도 피곤한 줄 몰랐어요." 그도 동서울대 실버복지학과에 당당히 합격, 만학도의 길을 이어나갈 참이다.
중ㆍ고교 내내 1등급을 놓치지 않았던 총학생회 부회장인 최청자(65ㆍ여)씨, 1975년 중학교 졸업 후 30년 만에 고교 졸업장을 받는 전영혜(50)씨 등 졸업생 모두는 "배움에 대한 열정이 오늘의 우리를 만든 원동력"이라고 입을 모았다.
93년부터 교육부 학력인정학교(중ㆍ고 각 2년과정)로 운영되는 이 곳은 15년간 4,000여명의 주부 중ㆍ고교생을 배출했다. 수학, 영어 등 인문 교과목에다 회계원리 등 실생활에 활용 가능한 과목들도 가르친다. 같은 처지의 주부이다 보니 마음도 잘 통해 학구열도 높다. 주말에는 봉사활동도 활발히 펼친다.
이현만 교장은 "청소년이 바르게 되기 위해서는 청소년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어머니들의 교양과 자질 향상이 중요하다"면서 "배움의 기회를 잃어 한평생 한을 품고 살아온 어머니들이 앞으로도 배움에 대한 꿈을 이어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종한 기자 tellme@hk.co.kr
장재원 인턴기자(이화여대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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