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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로 여는 아침] 로렐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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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로 여는 아침] 로렐라이

입력
2009.02.11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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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슬픈지

나는 모르겠네

옛날부터 전해오는 한 이야기가

머리 속을 떠나지 않네.

공기는 차갑고 어두운데

라인강은 고요히 흐르네

산꼭대기는 저녁 햇빛 속에

반짝거리네.

곱디 고운 처녀가

저 위에 놀라웁게 앉아있네

그녀의 황금빛 장신구는 빛나고

처녀는 황금빛 머리칼을 빗고 있네.

황금빗으로 머리칼을 빗으며

그녀는 노래를 부르네

노래 속에 든 이상하고도

마음을 뒤흔드는 멜로디.

멜로디는 작은 배를 탄 뱃사람을

거친 슬픔으로 휘어잡았네

그는 암초를 바라보지 않고

오로지 위를 올려다 보았네.

내가 알기로는 마침내 물결이

뱃사람과 배를 삼켜버렸다네

로렐라이가 부른 노래가

그렇게 했다고 하네.

중학교를 다닐 때 로렐라이라는 노래를 잔디밭에 누워 동무들과 함께 부르곤 했다(그때는 소위 말하는 '북괴'가 사용하는 말이라 하여 동무를 동무라고 부르는 것도 금지되던 시대였다). 독일로 와서 이 낭만적인 노래에 실린 가사가 하이네의 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유대인으로 19세기를 유럽에서 살아갔다. 기독교로 개종하면서, 기독교로 개종한 자신과 싸움을 벌이면서, 그리고 지독한 두통으로 시달리면서. 그는 독일에서 죽지 않고 파리에서 죽었다. 독일의 한 문학평론가는 하이네가 없었더라면 독일인들은 다르게 말을 하고 다르게 생각하며 다르게 한숨을 내쉬고 다르게 웃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히틀러의 나치정권이 들어서고 인종청소가 시작되면서 유대인들이 쓴 책들이 불태워졌을 때 이 시가 들어있는 하이네의 시집도 공개적으로 불태워졌다. 그러나 나치마저도 이 노래는 금지하지 못했다고 한다. 하이네 연구가들 사이에서도 이 시에 들어있는 진의가 무엇인지 논란이 심하다. 이루지 못한 사촌 여동생에 대한 사랑? 유럽사회에서 박해를 받으며 끝내 좌초해가는 유대인들의 운명? 이 모든 해석을 위한 시도들도 좋다. 하지만 내 마음 속에 든 로렐라이는 동무들과 잔디밭에 누워 흘러가는 구름을 보면서 노래를 함께 부르던 그 순간에 새겨져 있다.

허수경ㆍ시인

하인리히 하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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