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의 4ㆍ29 재ㆍ보선 출마 문제로 시끄럽다. 정 전 장관은 정치적 고향인 전주 덕진 출마를 정치 복귀의 계기로 삼으려고 한다. 그러나 대선패배 책임론, 개혁공천 등의 명분을 앞세운 당내 반발이 거세다.
다른 것은 몰라도 대선패배 책임론은 좀 그렇다. 민주당이 누구를 내세웠던들 이명박(MB)의 적수가 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때 MB는 강했다. 반 노무현 정서의 덕도 봤지만 계층과 지역, 성별과 연령을 가로질러 폭 넓은 지지를 이끌어 낸 힘과 이미지가 그에게 있었다.
상식적으로는 보수성향 후보를 지지하기 어려운 자영업자와 택시기사, 대학생들의 표심도 MB에게 쏠렸다. 성공신화와 추진력으로 뒷받침된 중도 실용주의가 경제 회생에 목말라 하는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MB가 취임 초 '이념보다 실용'이라며 실용 정부를 표방한 것은 당연했다.
실용 없었던 실용정부 1년
그러나 지난 1년의 이명박 정부에서 실용의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다. 문제 해결을 위한 실용주의적 고민보다는 어설픈 보수의 설익은 이념이 늘 앞섰기 때문이다. 인수위 시절 '작은 정부'라는 다분히 이념적인 구호 아래 밀어붙였던 정부조직 개편만 해도 그렇다. 조직개편 후 1년이 다 가도록 통합된 조직 내 업무 혼선과 갈등으로 진통을 겪는 부서가 적지 않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조직개편이었을까.
막 출범한 MB정부에 막대한 타격을 안겼던 쇠고기 졸속 협상 파문과 조류독감 대처 실패의 배경에는 정부조직 개편 후유증의 그림자가 진하게 드리워져 있었다. 오바마 미 대통령이 취임연설에서 지적했듯이 작은 정부냐 큰 정부냐가 아니라, 정부가 기능을 하고 있느냐가 중요했다. MB 정부는 실질적인 정부의 효율보다는 작은 정부라는 이념적 겉 멋에 집착했다.
최악의 남북관계도 실용보다는 이념을 앞세운 결과다. 지금의 얼어붙은 남북관계는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하다가 끝이 잘못되는 것보다는 시작이 조금 어렵더라도 제대로 출발해 결과를 좋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로 합리화할 수 없다.
특사를 내세우든, 고위급 회담을 통해서든 취임 초 진정성을 갖고 북측에 이전 정부와 다른 MB정부의 대북정책을 설명하고 담판을 짓자고 나섰더라면 사정은 달라졌을 것이다. 전 정부의 대북정책을 굽신 거리기로 치부하고 북측이 먼저 달라질 것을 기대하며 강경자세를 취한 결과가 지금의 남북관계 경색이다. 여기에 실질적으로 북측의 변화를 이끌어낼 실용주의적 MB표 대북정책은 없었다.
청와대와 정부 주변에서는 요즘 실용이라는 말 대신 법과 원칙이 강조된다. 이 대통령은 엊그제 취임 1주년에 즈음한 라디오 연설에서 "기본과 원칙을 붙잡고 뚜벅뚜벅 나아가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 대선 때 MB를 지지했던 표심이 대거 멀어져 간 것은 기본과 원칙이 부족한 탓만은 아닐 것이다. 최근 국정수행 지지도가 30%대로 반등한 추세가 뚜렷하지만 취임 초의 70~80%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탈층의 중심은 중도계층이다. 대선 때 그를 열렬히 지지했던 사람들이다.
중도 실용의 새 경지 열어가야
그렇게 떨어져 나간 중도층의 상당수는 박근혜 의원 쪽으로 옮겨가는 흐름이 뚜렷하다고 한다. 박 의원이 용산사태, 입법 전쟁 등에 대한 잇단 온건 발언으로 종래의 강경보수 이미지를 벗고 보다 중도적 입지를 강화하는 것이 효과를 보고 있는 셈이다. 보수 진영 내부의 친이, 친박 구도도 달라지고 있다. 이런 흐름이 대세로 굳어지면 MB는 중도의 광활한 터전을 잃고 강경 보수기반에 더욱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는 정치공학적으로도 남는 셈법이 아니다. 중도층을 겨냥한 실용주의는 말처럼 쉽지 않다. 자칫 대중영합주의로 흐를 위험도 크다. 그러나 오바마는 소통과 통합, 창조적 상상력으로 중도 실용의 새로운 경지를 열어가고 있다. MB라고 못할 게 없다. 미국과는 정치 수준이 다르다며 지레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이계성 논설위원ㆍ한반도 평화연구소장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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