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장병욱 기자의 다시, 길을 떠나다] <13> 사학자 강우방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장병욱 기자의 다시, 길을 떠나다] <13> 사학자 강우방

입력
2009.02.11 02:00
0 0

책 <낭만적인 고고학 산책> , 영화 '인디아나 존스', 최근의 TV 드라마 '밤이면 밤마다'까지, 일반인에게 고고학이란 낭만과 거의 동의어이다. 그러나 그 속내는 흔적뿐인 유물들과의 지리한 싸움이며 언론 등 세간의 호기심과 벌이는 신경전이다.

국립경주박물관 관장 등 고미술 관련 공무원 생활 29년, 이화여대교수 7년을 지낸 고고학자 강우방(68)씨는 2003년 이화여대 후문에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을 만들어 제2의 '올 인'을 선언했다.

봉원사 아래에 있는 그의 일향연구원에는 섬유예술, 조각 등을 전공한 교수나 작가들이 벌이는 토론의 열기가 대학 강의실을 뺨친다. 바깥에서의 강의 역시 그의 중요한 일상이다. 6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도자기 연구에 대해 강의했고, 26일에는 불상에 대한 강의를 펼친다.

그는 요즘 자신의 '일생일대의 퍼즐 풀이'라고 말한, 즉 한국과 세계 고미술품의 영기문(靈氣紋) 해석에 세월을 잊고 산다. "세계 미술사를 다시 쓰게 할 발견"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출간한 <한국 미술의 탄생> (솔)은 칠순을 바라보는 노학자가 세상에 던지는 도전장이다.

- 일상은 어떤가

"매일 연구원에 나와 공부를 한다. 직물ㆍ복식의 문양, 궁궐 건축에 관한 강의 등 최근에 가졌던 강의가 그래서 가능했다. 문 연 지 5년을 막 넘긴 이곳에서 <한국 미술의 탄생> 과 관련한 강의와 토론을 한다. 기존 학계의 통설과는 전혀 다른 해석이라 녹취해서 적절한 때 공개할 생각이다."

- 10일로 숭례문 화재가 난 지 1년이 된다

"조상의 선견지명이 새삼 놀랍다. 숭례문 지붕 끝에 날렵하게 올라간 치미(鴟尾)는 우리 조상에게는 용을 상징하는 것인데 '올빼미 꼬리'라고 하는 사람은 중국인들의 오해를 답습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목조 건물 최대의 약점인 불을, 물을 상징하는 용으로 막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우리의 건축은 노장사상이 반영된 소우주다. 유교는 도교를 괴력난신을 부추긴다며 부정했는데, 우리의 건축ㆍ그림은 도가사상을 모르면 이해 안 된다. 숭례문의 상징체계도 예외가 아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건축의 공포, 기와에 대해 특히 많았던 오해가 바로 잡히기를 바랄 뿐이다."

- 연구실에 광개토왕비 미니어처가 보인다

"중국 지안의 광개토왕비 앞에서 파는 미니어처 중 가장 큰 것으로 3년 전 구입했다. 안에 있는 벽화는 볼 수 없었지만, 원형대로 남아 있는 고구려 석성을 보고 감동했다. 중국 영토 내에 있는 150여 개 고구려 석성 중 하나인데, 보는 이를 압도하는 7~8 미터 높이의 석성을 처음으로 직접 보니 양만춘의 안시성을 중국이 넘보지 못한 이유를 절로 알겠더라."

- <한국 미술의 탄생> 은 어떤 책인가

"'영기 문양'이라는 하나의 원칙으로 세계 미술을 꿰뚫는다는, 내 새로운 연구의 출발점이기 때문에 커다란 애착을 갖고 있다. 고구려 금동일월석보관사유상, 신라 성덕대왕 신종, 백제 사리장엄구, 고려 수월관음도 등이 다 그렇다. 노장사상 최대의 개념인 생명, 즉 영기(靈氣)가 뻗어나가는 넝쿨 모양을 조상의 미술에서 확인하자는 것이다.

<한국 미술의 탄생> 에서 단순한 줄기 모양이 딴 줄기와 얽히면서 덩굴 문양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여러 색깔로 분석해 처음으로 밝혀냈다. 의미를 알 수 없었던 복잡한 도안의 구조를 분석, 단순한 덩굴 모양에서 복잡한 문양으로 발전돼 가는 과정을 여러가지 색채로 구분해 내는 방법이다.

지난해 7월에 큰 마음 먹고 일본 쇼가쿠간출판사에서 나온 세계미술전집 47권을 1,500만원을 주고 구입했다. 이제는 세계 미술을 영기문으로 새롭게 해석하겠다는 결심이었다."

- 영기문 연구로 어떤 변화가 예상되나

"특히 불화를 보는 데서 일대 변혁이 온다. 연꽃 밑에 추상적으로 그려져 있는 기하학적 도형으로만 파악돼 온 '영기'의 실질적 의미를 알게 됐다. 우리의 전통 예술품을 보는 데도 전반적인 변혁이 올 것이다. 복식, 건축, 도자기, 기와, 민화, 일반 회화 등 한국의 모든 그림이 새롭게 해석된다. 우리가 처음에는 알았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잊게 된 우리의 문화다.

현대 회화에까지 적용 가능하다. 클림트의 그림에서도 자주 나오는 문양으로, 불교 문화와 소원한 서양인들이 그 의미를 알 리 없다. 클림트조차도 모르고 그린 것이다.

영국의 디자이너이자 건축가인 윌리엄 모리스 등도 많이 썼는데, 역시 마찬가지다. 코린트 건축에서의 원주 장식 등에서도 발견되는 이 문양의 비밀이 풀리지 않자, 서양인들은 결국 아칸사스라는 꽃의 무늬로 여기고만 있다."

- 새로운 발견은 어떻게 가능했나

"고구려 고분 벽화를 연구하면서 일본인들이 국립박물관에 남겨둔, 원본 뺨치는 정교한 모사품을 연구하면서 결정적 힌트를 얻게 됐다. 3년 전의 일이다. 이후 그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고구려 벽화 모사품 전시회 등 기회 닿는 대로 발품을 팔았다.

그렇게 고구려 벽화 무늬에 착안, 단순한 데서부터 모사ㆍ분석해 나갔다. 이 같은 사실을 몰랐을 때는 그냥 '용과 당초 무늬의 혼합' 정도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

그 무렵 역사학자들과 떠난 그리스 답사여행이 비밀을 푼 결정적 계기였다. 코린트 시에 있는 신전 주두(主頭ㆍcapital)의 표현 양식이 우리나라 것과 똑 같아 큰 충격을 받았다. 우리 문화의 보편성에 대해 강력한 암시를 받았다."

- 당신의 새 이론에 대한 해외의 반응은

"사실 이번 연구를 치밀하게 한 것도 그것을 염두에 둔 때문이다. 연구 결과를 묶어 일본, 대만 등지에서도 강의했는데 약속이나 한 듯 침묵의 반응이었다.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이 문화의 중심이란 말이므로. 내가 주변에 "이제 유학 갈 필요 없다"고 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 현재 연구소는 어떻게 운영되고 있나

"집세는 수강료를 받아 충당한다. 나는 이번 발견을 근거로, 한국을 세계 문화의 허브로 만들 자신이 있다. '그리스-로마 신전의 주두 연구'가 대표적인 예다. 기둥 머리장식을 스무 가지로 분석한 연구를 보면 세계가 놀랄 것이다."

- 최종 목표는

"이 책은 2, 3, 4편 등 100권까지도 가능하다. '세계미술사'란 부제를 달아둔 데는 그같은 의도가 있다. 일향연구원은 향후 500명 제자를 목표로, 우리 미술의 진면목을 할 수 있는 데까지 알리자는 것이다.

내 강의 3~4년 계속 듣는 현재 수강생들을 주축으로 해, 금년 안으로 '영기학회'를 만들 계획이다. 이후 내 이론은 전 세계를 포섭하는 일반이론으로 거듭날 것으로 자신한다. 내 발견을 개인 학설의 차원에서 탈피, 세계에 나눠주겠다는 희망이기도 하다.

영어로는 우리말 발음 그대로, 'young-gi-ology'라 통한다. 사실 이 연구는 국가에서 후원해야 할 문제다. 한국이 역사상 처음으로 세계 문화의 허브가 되는 것이다. 수십억원 하는 고미술품 구입에서 한 건만 할애하면 되는 일이다."

● 소통 창구 인터넷

강우방씨의 일과는 컴퓨터와의 씨름이기도 하다. 오전 9시30분 도착, 오후 6시에 연구실 문을 나서기까지 컴퓨터 꺼질 시간이 없다. 집에서도 그 일과가 이어짐은 물론이다.

2007년부터 네이버 카페를 통해 공개하고 있는 그의 강의 모음 '미술사연구방법론'은 책에서는 맛볼 수 없는 강의의 현장이 생생하게 기록돼 있다. 그의 에세이집 <어느 미술사가의 편지> 는 강씨의 온라인 커뮤니티가 그려내고 있는 풍경을 생생하게 전한다.

그의 홈페이지(www.kangwoobang.or.kr)상의 커뮤니티 코너에는 한 달에 300여명 꼴로 편지가 들어온다. 그는 "초등학생도 호기심을 가질 수 있게 배려하고 질문에 답장도 빼먹지 않는다"며 "하루에 서너 건씩 계속 글을 올린다"고 말했다. 차세대 '강우방 학파'의 노둣돌인 셈이다.

도메인은 5년 전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을 열면서 그의 아이디어로 개설됐다. 자신의 이론을 보다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한 장치였다. 인터넷 덕에 해외에서도 연락이 오기도 한다. 금동미륵반가사유상 등의 연구결과는 이전에는 몰랐던 사실이어서 충격적이라는 반응들이다.

많으면 한 달에 원고지 500매까지의 글을 올릴만큼 그의 애착은 대단하다. 1년이면 2,000매 상당의 글이 모인다. 강씨는 "나의 학문적, 심리적 변화가 여기 다 기록돼 있다"고 말?다.

책 서너 권 분량은 되지만 차일피일 미뤄 오다 이번에 때를 만났다. <어느 미술사가의 편지> 는 <한국 미술, 그 분출하는 생명력> <미의 순례> <미술과 역사 사이에서> 에 이어 네번째로 나온 그의 예술론집이다.

장병욱 기자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