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같은’이 유행하나 보다. 이명박 대통령이 정보기술(IT) 업체 관계자들에게 “닌텐도 같은 거 못 만드냐”고 말한 데 이어 유인촌 문화체육부 장관은 4일 한국 음악산업진흥 중기계획을 발표하며 한국에서 “빌보드 차트와 그래미 시상식 같은” 것들을 만들겠다고 했다. IT에 대해서는 잘 모르니 한국에서 “닌텐도 같은” 걸 만들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정부에서 빌보드나 그래미같은 차트와 시상식을 만들 수 있다면, 유인촌 장관은 아마도 음악 산업의 영웅으로 남을 것이다.
한국에서 ‘빌보드 같은’ 차트를 만들려면 음악 산업 전체를 뒤집어야 한다. 일단 음반 판매 집계(빌보드는 한자리 수 단위까지 집계한다), 라디오 방송 횟수 집계, 음원 판매량까지 완벽에 가깝게 투명하게 집계해야 하고, 이것들이 현재 가요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따라 가중치를 매겨야 한다. 각 장르별 순위를 내기 위해 새롭게 생기는 장르의 흐름은 물론, 클럽이나 언더그라운드에서 인기 있는 음악도 모두 반영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음악 산업 종사자들의 동의를 얻어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래미 같은’ 시상식 역시 대부분의 음악 종사자들이 참여해 각 장르별 작곡, 편곡, 연주, 녹음에 대한 평가는 물론, 그들이 장르를 초월해 그 해 가장 좋은 음악을 뽑는 합의도 해야 한다.
간단하게 말하면, 진정한 ‘한국판 빌보드’와 ‘한국판 그래미’가 만들어지기 전에 유인촌 장관의 임기가 먼저 끝날 것이다. 빌보드 차트는 매주 1위부터 100위까지 인기곡을 써 놓은 종이 한 장이 아니고, 그래미 시상식은 가수들 모아놓고 축하 공연 한 번 하면 그만인 축제가 아니다. 이것들은 현재 미국 음악산업의 경향을 한 눈에 보여주는 산업 지도다. 음악산업의 기본인 투명한 음원 수익 집계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 ‘빌보드와 그래미 같은’ 것들이 만들어질 수 있는가. 지금 음악 산업에 필요한 것은 차트나 시상식이 하나 더 생기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들에 필요한 산업 인프라다.
그러면 빌보드나 그래미 같은 차트와 시상식은 민간에서 알아서 만들 것이다. 이런 전제조건이 없는 정부 주도의 차트와 시상식은 또 하나의 전시행정이 될 뿐이다. 유인촌 장관은 “빌보드 같은”이나 “그래미 같은” 말을 하기 전에 음악 산업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일이 무엇인지부터 찾아야 하지 않았을까.
강명석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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