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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란의 길 위의 이야기] 물고기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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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란의 길 위의 이야기] 물고기 정신

입력
2009.0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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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 설탕을 싣고 가던 배가 예멘 소코트라 섬 부근에서 좌초되었다. 수리하는 동안에도 배는 조금씩 기울어 갑판에 바닷물이 들이찼다. 수천 톤의 설탕도 며칠째 녹고 있다. 졸지에 물건 다 잃고 오도가도 못하게 생긴 선원들은 끌탕 중인데 물고기들은 신이 났다. 단맛 찾아 몰려든 고기들로 배 밑은 물 반 고기 반이다. 그곳은 천일야화의 본고장. 화가 머리 끝까지 오른 왕비는 주술을 걸어 백성들을 물고기로 만들어버린다.

이야기 속에서 튀어나온 듯 물고기 색은 백성들의 옷 색깔만큼이나 화려하다. 물고기들이 단맛을 안다는 사실도 신기하지만 몇 초에 불과하다는 기억력으로 그 단맛을 기억한다는 것도 놀랍다. 설탕물을 먹고 흡족해서 돌아서는 순간 방금 먹었던 단맛도 무언가 먹었다는 사실조차도 까맣게 다 잊을 것 아닌가. 물고기의 기억이 수 초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은 낭설인 듯하다.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물고기의 기억력과 학습능력이 뛰어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물고기들은 1년 전에 했던 실험의 결과를 기억하고 단번에 탈출구를 찾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제 깜빡깜빡 뭔가 잘 잊어버리는 사람들에게 “이런 물고기 정신!”이란 말을 했다간 물고기에게 실례가 되겠다. 하물며 물고기도 그러한데 인간인 우리가 지난 10년을 잊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것도 큰 실례가 되겠다.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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