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버스정류장 치안 비교·조사/ 군포 보건소 인근 정류장, 보행자燈 한 개도 없어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버스정류장 치안 비교·조사/ 군포 보건소 인근 정류장, 보행자燈 한 개도 없어

입력
2009.02.09 00:05
0 0

6일 저녁 경기 군포시 대야미동 군포보건소 앞 버스정류장. 한국일보와 이상원 용인대 경찰행정학과 교수팀이 찾은 이 곳은 연쇄살인범 강호순이 지난해 12월 여대생 A씨를 자신의 에쿠스 차량에 태워 사라졌던 곳이다.

남쪽에 들어선 버스 차고지를 빼면 주변이 대부분 야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버스도 15분에 한 대씩 다닐 정도로 인적이 드물었다. 오가는 차량이 적어 불빛이 적은데, 그나마 듬성듬성 있는 가로등마저 도로만 비추다 보니 정류장 쪽 인도는 짙게 어둠이 깔려 있었다. 성인 남성도 혼자 있기에 오싹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군포 지역 정류장 방범 사각지대

이곳 정류장에 대한 방범안전 점검 결과 15개 항목 중 10개가 미흡해 총점이 최저 -45점~최고 45점의 분포에서 -30점에 그쳤다. 가로등 밝기는 겨우 사람을 구별할 정도였으나 인도를 비추는 보행자 조명등이 한 군데도 없었다. 차량 단속용 폐쇄회로(CC)TV가 도로쪽에만 설치돼 인도 쪽은 무방비였고, CCTV가 설치되더라도 너무 어두워 식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특히 정류장 쪽을 관찰할 수 있는 주변 상가나 주택가가 없는 데다 가지가 무성한 나무나 기둥 등 사각지대도 많았다. 경찰지구대와 연결될 수 있는 비상벨도 물론 없었고, 순찰차가 다니는 모습도 거의 볼 수 없었다. 여성 혼자 버스를 기다리다 납치되거나 성폭행 당하는 일이 벌어지더라도 아무도 눈치챌 수 없는 환경이었다. 차도와 인도를 구분하는 안전바 등의 구조물도 전혀 없어 오토바이 날치기에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가능성이 높았다.

점검팀이 조사한 군포보건소 반경 2~3km 안의 버스정류장 10곳 모두 이와 엇비슷한 환경이었다. 두 곳이 -6점과 0점으로 간신히 '보통' 점수를 받긴 했으나 10곳 모두 인도를 비추는 보행자 조명등과 방범용 CCTV, 비상벨이 설치되지 않았다. -33점으로 최하위를 기록한 부곡동 입구 버스정류장은 정류장 건너편이 아파트 공사장인 데다, 가로등마저도 10m 거리에서 남녀를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여서 보행등과 CCTV가 시급히 확보돼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이상원 교수는 "이 정도로 정류장의 방범 환경이 취약한 줄은 몰랐다"며 "납치나 성폭행 범죄에 거의 무방비 상태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분당도 안심할 수는 없다

유동인구가 비교적 많은 성남시 분당구 중앙공원 일대는 10곳 중 8곳이 보통 수준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가로등 외에 보행자 조명등이 없는 곳이 많았고 경비절감 등의 이유로 가로등 두 개 중 한 개만 켜져 조명이 그다지 밝지는 않았다. 특히 -21점과 -15점을 얻어 취약지로 평가된 샛별마을과 한솔초등학교 앞 정류장은 주변에 상가가 없어 상호감시 기능이 취약했고 가로수가 가로등 불빛을 가리는 등 사각지대가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상원 교수는 "가로수가 불빛을 가리는 경우 가지를 치든가, 아니면 바닥에서 위쪽으로 밝혀주는 조명을 설치하는 등 방범기능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강남도 대체로 밝기는 하지만…

서울 강남의 정류장들은 예상대로 보통 이상의 평가를 얻어 도심과 외곽 지역의 격차를 확인시켰다. 압구정동 한양아파트를 중심으로 청담동ㆍ반포동 일대 10곳의 정류장을 조사한 결과, 4곳은 15점 이상을 넘어 비교적 양호했고, 6곳은 보통 수준이었다. 도로 양편의 가로등이 지그재그 형태로 균등하게 잘 배치돼 있고, 정류장 주변의 가로수 가지치기도 잘 이뤄져 조명을 가리는 곳도 많지 않았다. 보행자 조명등도 비교적 잘 설치돼 있었다.

하지만 강남 지역의 정류장 역시 군포나 분당과 마찬가지로 도로 단속용 CCTV 외에 정류장 쪽을 비추는 방범용 CCTV나 경찰지구대와 연결되는 비상벨은 전혀 설치돼 있지 않았다. 이 지역 주변 조명이 대체로 밝기는 하지만, 심야시간에는 취객들 간 시비가 자주 붙고 날치기도 적지 않게 발생해 비상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방범 환경이 갖춰질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번 점검 결과에 대해 이상원 교수는 "버스 정류장이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곳이란 편견 때문에 관심 밖에 놓여 있었지만, 심야 범죄에 의외로 취약한 곳"이라며 "당장 부족한 방범력을 높이기 위해선 조명등과 CCTV 등 물리적인 방범 환경부터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 외국에선, 도시 계획 단계부터 방범안전 환경 설계

영국, 일본 등을 비롯한 주요 국가는 20~30년 전부터 환경설계를 통한 범죄예방(CPTEDㆍ셉티드)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는 등 좁은 의미의 셉티드 뿐만 아니라 도시계획단계서부터 도시설계에 셉티드 원리를 충실하게 반영한다.

예를 들어 일본은 미드타운과 록본기힐즈 같은 도시 재개발지역에 도시계획단계부터 실행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분에 셉티드 원리를 도입했다. 주차장 등 보안이 취약한 공간에는 다수의 비상벨을 설치하고 보행자 통로에도 조명시설을 5m 간격으로 설치했다.

또 지역특성에 맞게 조도(照度)를 조정할 수 있게 했다. 조경을 위한 나무의 배치도 가로수의 밑동을 깎아내어 반대편의 보행자가 보일 수 있도록 정리했다. 또 도심 내 불량주택단지에는 방범연락소를 곳곳에 설치해 주민들에게 위탁운영하고 있다.

일본 과학경찰연구소는 잠재적 범죄 예방을 위한 연구활동도 활발하다. 예를 들어 주로 범죄목표가 되는 어린이에게 경량의 위치추적장치(GPS)를 가방에 달게 하여 2주간의 행동반경을 측정하고 추적된 위치를 점이나 선으로 표시하여 일정한 이동패턴이 생기면 범죄예방을 위한 순찰감시 활동에 나선다.

유럽에서 도시설계 단계부터 셉티드 원리를 가장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나라는 영국이다. 영국은 1998년부터 법을 통해 셉티드를 도시계획과 설계에 적극 도입했다. 영국 브리스톨시의 경우 건축허가 신청 이전단계나 주요 도로 개설 및 환경개선 계획 수립 시 건축주는 셉티드 담당 경찰관에게 사전에 통보해 경찰의 의견을 구해야 한다.

시청 담당자는 이를 근거로 사업 승인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특히 도시설계나 건축 설계의 부실로 침입절도나 강도 등이 발생하면 인권법에 의해 건축회사나 자치단체를 상대로 소송을 할 수 있다. 때문에 지방정부와 건축회사가 셉티드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네덜란드 역시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해 놓고 있다. 공공장소에서의 방범등 설치 및 운영 기준은 주거지역의 경우 약 4m 전방에 있는 사람의 얼굴을 식별할 수 있는 정도의 조도를 요구하며, 주차장의 경우 주차장 사이에 심은 관목은 최대 50cm를 넘어서는 안 되는 등 엄격한 규정을 적용한다.

독일은 범죄예방활동이 도로교통만큼 중요하게 여겨진다. 몇몇 주에서는 도로교통안전 부서에 범죄예방 전문가들이 함께 근무한다.

▦정류장 방범안전 체크리스트

1 조명은 10m 떨어진 사람의 이목구비를 구별할 수 있을 정도의 밝기(15룩스)인가? (정류장 인근 50m지점에서 조사)

2 정류장 인근 보행로는 육안으로 봤을 때 차로와 평행하게 배치해 지나가는 차량이 감시자의 역할을 할 수 있는가?

3 정류장 인근 보행로 주변에 사람 눈 높이에 가지가 울창한 나무 등이 있어 시야를 가리지 않는가?

4 정류장 인근 50m 안에 범죄자가 숨어 있을 만한 기둥, 컨테이너 박스 등이 있는가?

5 가로등의 간격이 일정해 부분적으로 어두운 곳 없이 균등하게 빛을 비추고 있는가? (정류장에서 100m까지 조사)

6 도로 건너편의 가로등과 비교해 볼 때 지그재그로 배열되어 있는가?

7 돌 등을 던져도 조명 파손 우려가 없는가?

8 정류장에는 방범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는가?

9 정류장에 범죄에 대비한 비상벨이 설치되어 있는가?

10 아파트 등 사람이 상주하는 곳에서 정류장을 내려다 볼 수 있는가?

11 주변에 편의점, 공원 등이 있어 정류장과 상호 감시가 가능한가?

12 도로의 수목이 조명을 가려서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가?

13 보행자의 얼굴을 쉽게 인식할 수 있도록 차도를 위한 조명과 함께 보행등이 별도로 설치돼 있는가?

14 오토바이 날치기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차도와 인도를 구분하는 안전바 등 구조물이 있는가?

15 인도의 폭이 1.5m 이상인가?(1.5m 이상이 돼야 오토바이를 타고 도로에서 손을 뻗어 백을 잡으려 해도 피할 수 있다.)

*문항별로 미흡(-3), 보통(0), 양호(+3)으로 평가해 점수화한 뒤, 15개 문항의 점수를 합해 종합 평가. 따라서 최고점은 45점. 최하점은 -45점. 100점 만점으로 환산했을 때 70점 이상이 되는 33점 이상이면 양호한 것으로 간주. -33점 이하면 불량. 그 사이 값이면 보통 수준.

종합 평가가 양호하더라도 문항별 불량이 있으면 개선 대상.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강희경기자 kbstar@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