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간부의 성폭력 관련 파문으로 민노총이 총체적인 위기를 맞고 있다.
민노총 입장에서 이번 위기는 간부의 뇌물수수 비리로 지도부가 총사퇴 한 2005년보다 더 근본적이다. 사안 자체가 전 국민적 공분을 살 수밖에 없는 성폭력과 관련한 것인데다, 4년 전과 달리 민노총 지도부 자체가 사건을 은폐하고 피해자를 회유ㆍ압박하는 등 2차 가해를 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파문으로 노동계와 진보진영의 민노총에 대한 불신, 나아가 노동계에 대한 전 국민적 불신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비정규직 문제, 일자리 나누기, 구조조정에 따른 노사대립 등 경제위기에 따른 산적한 노동계 현안들도 파행으로 치달을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진보진영조차 민노총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는 점은 이번 파문이 민노총에 얼마나 치명적인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진보신당은 5일 논평에서 "이번 사건은 해당간부의 개인적인 일이 아니라 민노총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며 민노총의 반성과 변화를 촉구했다. 친노동계의 진보학자인 노중기 한신대 국제사회학부 교수 역시 "이른바 '민주' 노총이 '민주주의'를 가로막고 있는 성차별의 극단적 형태인 성폭행 문제를 노출했고, 더욱이 이를 덮고 가리고, 적당히 넘어가려 했다"고 비판했다.
이 때문에 단기간내 민노총의 신뢰 회복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민노총 위기가 장기화하면서 노동계 전체의 위기로 번지고, 나아가 올해 내내 노사관계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얘기이다. 진보신당 심상정 대표는 "이번 파문이 민노총의 지도력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며 "민노총 등 노동계가 가장 목소리를 높이며 노동자 권익보호에 나서야 할 경제위기의 시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당장 비정규직의 대규모 양산을 초래할 수 있는 비정규직법 개정을 정부가 2월에 서둘러 처리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민노총 지도부가 와해되면서 전체 노동계가 아무런 대응을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 일각에서는 민노총내 정파간 노선경쟁이 격화하면서, 연맹이나 개별 사업장에 따라 노사관계가 더 격렬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일자리 나누기 등 경제위기에 따른 노사정간 대타협 역시 미궁으로 빠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민노총은 최근 내부적으로 '노사민정 비상대책회의' 참여를 검토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이번 파문으로 민노총의 대책회의 참여는 요원해질 가능성이 높다. 한국노총 강충호 대외협력본부장은 "이번 사건으로 비정규직 문제와 구조조정에 대한 노동계의 대응, 일자리 나누기를 위한 대타협 등 현안에 대한 노동계의 공동대응이 어려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노중기 한신대 교수는 "민노총이 국민적 신뢰는 물론, 노동계의 신뢰를 회복하고 노동계 현안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기 위해서는 지도부의 총사퇴 등을 통한 근본적인 혁신과 새로운 출발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유병률 기자 br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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