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게 말이다. 닌텐도가 일본이 아닌 우리나라 기업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렇게 경제가 어려울 때 닌텐도 게임기와 같이 일자리도 만들어 주고 외화도 벌어주는 효자 상품이 있다면 특히나 고마운 일일 것이다.
기술 개발에 주력해온 일본
그러면 일본은 어떤 방법으로 그렇게 기가 막히게 훌륭한 닌텐도 게임기를 만든 것일까? 옆 집 아이가 공부를 잘하면 옆 집 엄마는 무슨 특별한 약이나 특별한 음식을 먹이고 있는가도 싶고, 무슨 비밀 특수 과외라도 시키나 의심이 가기도 한다. 과연 일본의 사업가들과 기술자들은 우리들 몰래 무슨 아이디어가 샘솟는 약이나 음식이라도 먹고 있는 것일까?
자세히 살펴보면 일본에 아이디어 생기는 약이 있는지는 몰라도 여러 회사의 경영자들과 기술자들이 골고루 나누어 먹는 것 같지는 않다. 도요타 자동차 등 자동차 회사들이 요즘은 어렵다고 하고, 소니, 파나소닉, 히타치 등 굴지의 전자회사들은 이미 한국의 전자회사들에게 뒤처진 지 오래기 때문이다. 특히, 플레이스테이션으로 닌텐도와 경쟁하던 소니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닌텐도의 히트 상품 휴대용 게임기는 과거 게임기가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에 눌려서 위기에 처하자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고 만들어낸 것이다.
학생 때 배운 시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울었나 보다." 일본이 피워낸 국화꽃 한 송이를 보고 부러워하면서도 그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울어댄 소쩍새를 잊는다면 좀 서글픈 일이 아닐까 싶다. 서글픈 이유는 우선 국화꽃만 보고 소쩍새의 노고를 잊으면 소쩍새가 너무 가엾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제학적으로도 소쩍새를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있다.
숲속의 소쩍새가 울면 소쩍새 자신만 힘들지만, 우리 경제의 소쩍새가 울면 많은 돈이 들고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소니처럼 닌텐도와 경쟁하다가 뒤처져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들이 바로 닌텐도 게임기를 꽃피우기 위해 울어대었던 소쩍새였다. 그나마 소니는 이름이라도 알려진 회사이지만, 이름도 없이 울다 사라진 일본의 게임기 회사들은 또 얼마나 많겠는가?
우리도 열심히 하면 닌텐도를 뛰어넘는 게임기를 만들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국화꽃을 피우는 것이 좋은 것일까? 국화꽃은 정말로 소쩍새들이 울면서 피울 정도의 가치가 있는 것일까? 그러다가 소쩍새만 실컷 울고 국화꽃이 피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우리는 이미 김대중 대통령 시절 정부의 주도로 일어났던 벤처 붐을 경험한 바가 있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자본과 인력이 들어간 벤처 붐의 결과 나온 것이 무엇이었는가? 누구누구 게이트, 아무개 게이트라는 식의 벤처 비리 이외에는 특별히 기억나는 것이 없다. 소쩍새만 실컷 울고 꽃은 피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밖으로 보이는 일본 기업들은 너무 폼이 난다. 잘 알려지지 않은 중소 규모 기업 연구실의 연구원이 노벨상을 받는가 하면 다른 연구원은 블루LED라는 획기적 발명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폼 나는 결과 한 두 개를 만들기까지 일본의 중소기업들이 얼마나 많은 돈과 인력을 성과도 없는 연구에 쏟아 부었는지 사람들은 잘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다.
부럽다고 맹종하는 건 잘못
지금 일본 사람을 잡고 일본 경제에 대해 물어보면 십중팔구는 일본 경제의 미래가 큰 걱정이라고 걱정을 늘어놓을 것이다. 닌텐도가 있는데도 말이다.
세계적으로 경제가 어렵기 때문에 해외 수출에 크게 의존하는 한국의 경제도 한동안 매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어렵다고, 남의 떡이 커 보인다고 허겁지겁 행동하다가는 더 큰 잘못을 저지를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정부가 주도해서 잘못 일을 벌이면 소쩍새 한 두 마리만 우는 것이 아니라 온 국민이 울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꽃도 좋지만 소쩍새를 잊지 말자.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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