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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금빛 포석' 스포츠 바둑 시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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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금빛 포석' 스포츠 바둑 시대 열렸다

입력
2009.0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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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이 드디어 정식 스포츠 종목으로 인정 받았다. 대한체육회는 4일 열린 이사회에서 사단법인 대한바둑협회(회장 조건호)를 55번째 정가맹 단체로 승인했다. 공식적으로는 19일에 열리는 대의원 총회의 최종 승인을 남기고 있지만 이사회에서 거의 만장일치로 의결됐기 때문에 특별한 돌출 변수가 불거지지 않는 한 무난히 통과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로써 지난 2001년 한국기원이 '이제부터 바둑은 체육이다'라고 선언한 이후 꾸준히 추진돼온 '바둑의 체육화' 작업이 일단 소기의 성과를 거둔 셈이다. 2002년 대한체육회 인정 단체 승인, 2005년 체육 단체로서의 요건을 갖추기 위해 전국 16개 시도지부를 거느린 대한바둑협회 창설, 2006년 대한체육회 준 가맹 단체 승인 등 일련의 노력이 결실을 거둔 것이다.

바둑은 삼국 시대에 우리나라에 전래했다고 알려지고 있는데 사실 바둑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그동안 여러 가지 주장이 있었고 최근까지도 "문화 예술이냐 체육이냐"에 대해 논란이 그치지 않았다. 이번 정가맹 승인을 계기로 일단 대세는 체육으로 완전히 기울어진 셈이다.

바둑계로서는 대체로 "해묵은 숙원이 해결됐다"며 반기는 분위기다. 정가맹 단체 승인을 계기로 '체육으로서의 바둑'이 '또 한 번의 중흥기'를 맞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다.

최근 바둑계의 가장 큰 고민은 젊은 층이 바둑을 멀리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바둑이 전국체전이나 소년체전 등 종합 체육 대회에 정식종목으로 채택될 수 있게 된다. 바둑은 2002년 대한체육회로부터 인정 단체의 승인 받은 이후 2003년부터 계속 전국체전에 전시 종목으로 참여해 왔다. 이번 정가맹 단체 승인이 정식 종목으로의 자동 승격이라는 수순으로 자연히 이어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따라 초ㆍ중ㆍ고교는 물론 대학을 포함, 각급 학교에 바둑부가 만들어지고 학교에서 정식 체육 과목의 하나로 바둑을 가르칠 수도 있게 돼 청소년 바둑 인구가 크게 늘어나고 자연히 바둑 지도자 수요도 증가할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바둑 특기생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학교는 명지대 대불대 영동대를 비롯해 충암고 명지고 선린인터넷고 동양공고 경성고 등 고등학교, 그 밑으로는 충암중 명지중 경성중 신월중 상신중 흥진초등학교 등 전국적으로 20여개교를 헤아린다. 나아가 앞으로 국군 체육 부대에도 바둑팀이 신설된다면 국가 대표급 바둑 고수들의 병역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바둑 보급 형태에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우선 전국의 바둑 교실이 학원이 아니라 체육 시설로 바뀐다. '체육 시설물에 바둑 도장을 추가해 달라'는 내용의 체육물 시설법 개정안이 이미 2월 임시 국회에 발의돼 있는 상태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앞으로 모든 바둑 교실은 태권도 도장과 같이 일정 수준의 자격을 갖춘 '바둑 지도자'들이 운영하는 '바둑 도장'으로 바뀌며 유아들을 위한 '바둑 유치원'도 합법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된다.

해외 보급도 활발해 질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일고 있는 마인드 스포츠 열기에 힘입어 바둑이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 체육 코드로서 확실하게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태권도의 사례가 웅변하고 있다.

바둑이 정식 체육 종목으로 바뀌면서 우선 가장 기대를 모으는 계기가 바로 내년에 열리는 광저우 아시안 게임이다. 바둑 선수들이 가슴에 '진짜 태극 마크'를 달고 출전하는 첫 대회이기 때문이다. 그 동안 한국이 국제 기전을 여러차례 싹슬이하는 등 맹위를 떨쳤지만 금메달의 가치는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과 비할 바가 못 된다. 바둑이 '제2의 중흥'을 이루기 위해서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반드시 금메달을 따야 한다는 지적이 더욱 설득력을 띠고 있다.

아시안게임의 전초전 격인 작년 10월의 월드마인드스포츠게임즈 결과를 놓고 본다면 크게 비관할 것도 없지만 마냥 낙관할 만한 상황도 아니다. 시간은 충분하다. 한국기원과 대한바둑협회가 긴밀한 협조 아래 대표팀 선수 선발이나 훈련에 만전을 기해 기필코 이번 아시안게임에 걸린 3개의 금메달을 몽땅 한국 선수들이 목에 걸고 오기를 기원한다.

그러나 이 같이 달콤한 분홍빛 시나리오가 실현되자면 앞으로 바둑계가 함께 고민하고 협조하면서 풀어나가야 할 부분이 많다. 대한체육회에 정가맹 승인이 났다는 것만으로 바둑이 어느날 갑자기 번창할 수는 없다. 현재 대한체육회 산하에 바둑을 포함해 무려 55개 정가맹단체가 있지만 이 중 대부분은 팬들에게서 철저히 외면 당하고 있다. 즉 대한체육회 정가맹이 개별 종목의 저변 확대에 필요 조건이긴 하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충분 조건은 아니라는 얘기다.

오히려 바둑계 일각에서는 이번 정가맹을 계기로 아마추어를 위주로 하는 대한바둑협회와 프로기사 중심의 한국기원이 서로의 이해가 엇갈려 앞으로 효율적이고 일관성 있는 바둑 정책 추진에 어려움을 겪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두 단체는 벌서부터 여러 분야에서 불신이나 알력이 일부 노출되고 있어 이를 서둘러 봉합하고 아마추어와 프로가 함께 발전하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상생(相生) 위원회'가 발족되기도 했다.

어쨌든 주사위는 던져졌다. 바둑의 체육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이제부터는 바둑이 지난 2000년간 걸어 왔던 것과 전혀 다른 길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자면 지금까지 입고 있던 낡은 옷을 벗어 버리고 '스포츠'라는 새 옷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또 새로운 옷차림에 걸맞게 바둑계 구성원 모두의 사고 방식 또한 확 바뀌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최근 국내 프로 기사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뼈와 살을 깎는 아픔을 감수하며 '상금제'와 '아마추어에 대한 문호 개방' 등 기전 개혁 작업을 획기적으로 밀어붙여 실현시킨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박영철 객원 기자 indra036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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