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난도 바에스 지음ㆍ조구호 옮김/주류성 발행ㆍ424면ㆍ1만8,000원
"가치를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이라크 옛 왕가들의 문서를 포함하여 오토만 왕조의 역사적인 문서를 소장하고 있던 보물인 국립 도서관과 국립 문서고는 3,000도에 이르는 고열에 재로 변했다."(394쪽)
이라크가 백기를 든 뒤, 처참한 아수라의 현장으로 변한 2004년 4월 바그다드의 국립 문서고에서 펼쳐진 만행을 고발한 기사다.
그 광경을 빤히 보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미군의 행태 역시 기사는 누락시키지 않았다. 광기에 휩싸인 군중은 군인들의 그같은 수동적 자세에 고무, 문서고에 휘발유를 뿌리고 수많은 책을 일거에 잿더미로 만들어버렸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역사적 문화재를 일거에 파괴한 후세인이 대단한 책벌레였다는 점이다.
분서(焚書)에의 욕구는 인간의 본능일까. 기원전 3세기 진나라는 실용서를 제외한 모든 사상서를 불살라 없앨 것을 명했다. 5세기에 유럽으로 쳐들어가 로마 문명을 참살한 반달족은 역사의 뒤안길로 완전히 사라져 버렸고, 무자비한 문명 파괴를 뜻하는 '반달리즘'이란 말로서만 남아 있다. 사실 책이 탄생한 55세기 전 수메르 시대부터 인간들은 책을 파괴해 왔다.
베네수엘라의 도서관학자이자 시인, 소설가인 저자는 <책 파괴의 세계사> 에서 고대 수메르 시대부터 21세기 테러리즘의 현장에 이르기까지, 책을 살해해 온 야만의 역사를 파헤친다. 사라진 책의 4할은 자연재해, 사고, 특정 언어의 사멸, 문화 변동, 도서의 물리적 한계가 그 원인이었다. 나머지 6할은 인간의 자발적 파괴 행위 때문이었다. 저자가 인간의 책 파괴 역사를 '야만의 역사'라고 이름하는 이유다. 책>
어른을 위한 동화인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마저 그 야만을 피할 수 없었다. 1976년 아르헨티나를 지배하던 군부는 <어린 왕자> 를 "전통 가치를 부정한다"는 이유로 불태웠다. 파블로 네루다, 가브리엘 마르케스 등의 "불순한" 책들 역시 같은 길을 피할 수 없었다. 조앤 롤링이 만들어낸 <해리 포터> 의 주인공들은 2001년 광적인 기독교도의 불 세례를 받아야 했다. 서구인들이 중국 문화대혁명의 광기를 비웃기는 힘들다. 해리> 어린> 어린>
책은 '기억을 연결시켜 주는 가장 효율적 수단'이기 때문에 역사, 사상의 격변기에 우선적으로 파괴된다. 그 도구로써 왜 불이 사용될까? 그것은 종이를 검은 재로 만들어버린다는 것이 보여주는, 이성을 한 줌의 재로 만들어 버린다는 사실의 강렬한 상징성 때문이다. 책의 파괴사에 대해 12년 동안 연구해 온 저자는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교양이 높은 사람일수록 묵시록적 신화의 압력을 받아 책을 말살할 준비가 더 잘 돼 있다"(37쪽)고 말한다.
인간이 책을 파괴하는 것은 반드시 승리의 확인을 위해서만은 아니다. 신념의 과잉 역시 중요한 이유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자신의 학설과 배치되는 에드문트 후설의 책을 꺼내 불사르라고 제자들에게 지시했다. 이같은 에피소드가 산재해 있는 이 책에는 무지, 광기, 폭압, 야만, 증오 등의 이유로 자행돼온 책 파괴의 역사가 저자의 박학 덕에 소설처럼 풀려나온다.
시대가 갈수록 책에 대한 모독은 업그레이드됐다.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책 파괴술도 눈부시게 발달했다. '책 폭탄'은 전통적 방식이다. 마피아나 테러리스트 집단이 흔히 이용하는 이 방법은 책을 펼치자마자 폭파되게 만드는 것으로, 2003년 유럽연합의 프로디 의장이 이 때문에 죽음의 고비를 맞기도 했다.
학생 한 명이 1,400만권의 장서를 한 손에 들고 다닐 미래도 머지않다. 그가 100nm(나노미터)의 알루미늄 초박막에 아크릴 피막을 덧씌워 만든 콤팩트디스크로 해킹을 시도, 거대한 도서관의 정보를 폐허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날도 머지않다. <책 파괴의 세계사> 는 그렇게 인류의 지혜의 축적인 책에 가해진 폭력의 역사와 미래를 실감나게 보여주며 경고한다. 노엄 촘스키는 이 책을 "비슷한 주제에 관해 씌어진 저작들 가운데 가장 뛰어나다"고 상찬했다. 책>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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