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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종이 부인'展 한국화가 정종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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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종이 부인'展 한국화가 정종미씨

입력
2009.02.09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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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 6.3m 세로 2.1m의 거대한 붉은 화폭 한가운데 자리한 작은 여인의 표정은 온화하지만,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서슬 푸른 기운이 느껴진다. 서울 사간동 금호미술관 2층 전시장 한쪽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는 한국화가 정종미(52)씨의 작품 '명성황후'다.

정씨는 전통 한지를 바른 화판 위에 소목나무 삶은 붉은물로 염색한 모시를 부착시키고, 적색 안료와 광택제 역할을 하는 콩즙을 반복해 칠하며 역사의 두께를 만들어나갔다. 그리고 홍두깨에 말아 두들겨 치밀하게 만든 닥종이로 명성황후의 자태를 콜라주했다. 섬세한 금박 무늬가 그려진 풍성한 종이 한복 자락이 금세 바스락 소리라도 낼 것 같다.

그는 이 '명성황후'를 작업하는 3개월간 가위에 눌리고 우울증에 시달릴 만큼 힘들었다고 한다. "우리 민족의 수난사가 그 분의 죽음에서 시작됐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황후로서, 여자로서, 또 한 인간으로서 명성황후가 겪었던 감정과 격변의 시대를 어떻게 그림으로 풀어낼까 하는 긴 고민의 결론은 '단순하게 가자'였습니다. 배경의 붉은색을 통해 충격과 격동과 정열을 함축시켜 나타내고자 했어요."

금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정씨의 전시 '역사 속의 종이부인'은 명성황후를 비롯해 논개, 황진이, 허난설헌, 신사임당, 유관순, 나혜석 등 우리 역사 속 여성들의 모습을 닥종이, 모시 같은 전통 재료와 채색 기법으로 담아낸 것이다.

2004년 '종이부인' 전에서 익명의 여성들을 통해 전통적 어머니상을 포괄적으로 표현했던 그는 이번에는 낯익은 이름들을 하나하나 불러냈다.

"시대를 넘어서서 자신의 삶을 창의적으로 살고자 했던 여성들을 택했어요. 조선 때 여성들이 가장 많은데, 아마 여성에 대한 억압이 컸던 시대였기에 그만큼 독특한 삶의 모습들이 다양하게 나온 것 같습니다."

'논개'는 꽃처럼 붉은 치마폭을 휘날리며 푸른 강물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모습이다. 열손가락에 반지를 낀 여인은 왜장을 껴안는 대신 두 팔을 활짝 벌린 채 자유를 되찾았다. '황진이'는 조각보 기법을 통해 예인으로서의 화려한 인생을 조명했다.

"여성의 규방에서 나온 자수와 조각보 기법은 한국 채색문화의 전통을 잇는 최고의 예술 형태"라고 말하는 정씨는 비단의 일종인 갑사를 바느질해 화면에 붙이고, 그 위에 자수를 하듯 문양을 그렸다.

그리고 정작 주인공 황진이는 화려한 화면에서 멀찍이 비켜서게 해 삶의 허무함을 전했다. 주몽의 어머니 '유화부인'은 고구려 벽화 속 이미지로 나타냈고, '선덕여왕'에는 금박과 금분 등 괘불탱화의 기법을 빌려왔다.

인도에서 흘러와 가야의 왕비가 된 '허황옥'의 주위에는 꽃상여에 쓰이는 지화(紙花)가 가득하다. 역사 속 여성들을 그림 속에 불러내는 작업이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그들을 위한 잔치가 됐으면 하는 작가의 바람을 담은 것이다.

정씨는 오랫동안 종이와 여성이라는 두 가지 주제를 탐구하고 있다. 1994년 뉴욕의 종이공방에서 공부하면서 한국 교포 여성들의 강한 생활력과 포용력이 한지의 물성과 유사함을 느꼈다고 한다.

"한지는 가장 질기면서도 부드러워요. 또한 포용력 있는 바탕을 지니고 있어서 천연의 색을 잘 받아들이고, 자연스럽게 발색합니다. 한국 여인의 기질을 담아내기에 가장 적합한 재료죠."

정씨는 다음 작업 주제는 전통 이야기 속의 여성들로 정했다. 그는 "한번도 만난 적 없는 춘향과 심청의 얼굴을 발견하기 위해 일부러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 건너편 여성들의 얼굴을 유심히 살피곤 한다"고 말했다. 3월 1일까지, 관람료 1,000원. (02) 720-5114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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