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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 꿈' 이룬 장애인커플 이경돈·이정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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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 꿈' 이룬 장애인커플 이경돈·이정민씨

입력
2009.02.09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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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월급 타던 날은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평생 잊지 못할 순간'으로 꼽겠지만, 이경돈(32) 이정민(25ㆍ여)씨 커플에게는 더 각별했다. 각각 뇌성마비와 편(便)마비 장애인인 이들은 지난달 10일 현재 직장에서 첫 월급을 탔다. 더 이상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부당하게 잘리거나 월급을 떼일 걱정이 없는 '정규직'으로서 받은 월급이었다.

세금 등을 떼고 각자 손에 쥔 돈은 최저임금 수준인 86만원. 그래도 세상 다 얻은 듯 기뻤다. "그날 정민이랑 분식집에 가서 돈까스랑 라볶이, 김밥 먹고 노래방도 갔는데, 정말 꿀맛이었어요. 부모님께 용돈도 드리고 결혼자금 마련하기 위해 적금도 들었고요. 요즘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매일 들어요."(경돈씨) 월급 봉투를 받아 들고는 너무 감격해 펑펑 울었다는 정민씨는 "양가 부모님 허락도 받았으니 이제 결혼할 일만 남았네요"라며 수줍게 웃었다.

이들이 일하는 ㈜나눔의 일터는 사장을 뺀 전 직원이 장애인인 세차 전문 서비스 업체로, 얼마 전 노동부로부터 '사회적 기업' 인증을 받았다. 둔촌동 주유소 2층을 빌려 쓰는 본사에서 정민씨는 사회복지사로, 경돈씨는 사무직으로 일한다.

여기까지 오는 길은 멀고 험했다. 전주대 법대(경돈씨), 경희사이버대 사회복지학과(정민씨)를 나온 엄연한 4년제 대학 졸업생이었지만, 장애인을 그것도 정규직으로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이런 사정을 익히 안 경돈씨는 재학 시절 2년간 9급 공무원 시험에 매달렸지만 번번이 쓴 잔을 마셨다. 답안지에 마킹 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리고 헛손질로 망치기 일쑤여서 단 한 번도 답안지를 완성해 낸 적이 없었다.

2004년 8월 졸업 후 취직이 안돼 동사무소에서 공공근로를 했는데,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3개월 만에 그만둬야 했다. 자괴감에 빠져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정민씨도 다르지 않았다. '장애인 사회복지사'는 1년 계약직으로 겨우 자리를 얻은 장애인시설에서도 차별을 감내해야 했다. 밥 먹는 자리조차 정규직들과 분리돼 있었고, 재계약은 이뤄지지 않았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났던 전동휠체어 판매 회사에서는 8개월을 일하고도 첫 달 말고는 월급을 받지 못했다. 장애인 고객을 상대하는 일이라 장애인들을 고용한 사장은 "너희들이 열심히 일을 안 해 돈을 줄 수 없다"고 억지를 부렸지만, 항변도 제대로 못했다.

이들은 지난해 10월 나란히 ㈜나눔의 일터 합격 소식을 듣고도 "기대 반, 두려움 반이었다"고 했다. 훈련기간을 거치면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말도 처음에는 믿어지지 않았단다. 약속은 지켜졌고, 10일이면 두 번째 월급을 탄다.

두 사람은 이제 절망도, 자학도 하지 않는다. 평생을 함께 할 짝이 있고, "여기까지 오면서 받았던 상처를 다른 장애인들은 받지 않도록 돕겠다"는 꿈도 있다.

언젠가는 장애인의 가려운 곳을 속속들이 긁어주는 실질적인 서비스 위주의 장애인자활센터를 설립하겠다는 포부도 있다. 각자 운영하는 장애인 관련 인터넷 카페는 그런 꿈을 향해 내딛은 첫 발자국인 셈이다.

경돈씨가 만든 '장애인의 일과 사랑'(cafe.daum.net/disabledinworklove) 카페는 문패 그대로 구직 정보와 함께 사랑, 결혼 등에 관한 자료도 제공한다. "장애인이 행복하려면 첫째는 경제적 자립을 위한 일자리, 둘째는 사랑이 필요합니다. 현재 회원은 160여명인데, 회원이 더 늘고 카페가 활성화 되면 좋은 짝을 연결해주는 일도 하고 싶어요."

정민씨는 장애인 선배와 '태ㆍ선(태아알콜증후군ㆍ선천성기형)환우회'(cafe.daum.net/kfas) 카페를 열어 부회장을 맡고 있다. 희귀병 전문의 정보와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회원들 사연이 TV 프로그램에 소개되면서 입소문을 타 무려 780여명이 가입해있다.

이들은 사회적 인식 못지않게 장애인들의 자세도 바뀌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일부 장애인들이 '나는 장애인이니까 일은 비장애인들이 하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데, 그 습성을 깨야만 당당하게 사회생활을 할 수 있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나서 우리의 권리를 주장하면 비장애인들도 인정할 수 밖에 없지 않겠어요?"

경돈씨는 스스로를 '온달'이라 부른다. 당연히 정민씨는 '평강공주'다. "한때 세상과 제 운명 탓하느라 시간을 허비했죠. 손목을 긋는 어리석은 짓도 하고…. 지금도 '바보' 온달이지만, 이제 평강공주를 만났으니 언젠가는 장군이 될 거예요."

올해 안에 신부로 맞아들일 정민씨를 바라보며 정민씨를 반하게 만들었던 특유의 '살인미소'를 날리는 경돈씨, 영락없는 바보 온달이다.

김혜경 기자 thank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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