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는 4년제 대학 총장들의 모임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엄청난 힘을 실어주었다. 정부의 '대입 3단계 자율화' 방안에 따라 대입 관리 업무 외에 대학들의 본고사 실시 여부 등을 감독할 수 있는 '자율 규제' 권한을 덤으로 받았다. 대학 총장들의 단순한 친목 모임 수준에서 벗어나 명실상부한 대학 대표기구로서 '정책과 규제'라는 양날의 칼을 모두 쥐게 된 것이다.
그러나 불과 1년여가 지난 지금 대교협이 각 대학의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통제하는 자정 능력을 상실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다. 국내 대표 사학인 고려대와 연세대에 의해 대입 정책의 근간이 돼 온 '3불(본고사ㆍ고교등급제ㆍ기여입학제 금지) 정책'을 허무는 움직임이 노골화하고 있지만 대교협이 보인 대응은 거의 무소신에 가깝다.
고려대의 2009학년도 수시 2-2전형 고교등급제 실시 논란이 대표적인 예다. 대교협은 지난해부터 불거진 이 문제에 대해 "입시전형이 끝나는 2월말까지 판단을 유보하겠다"는 일관된 입장을 보여왔다. 최근 고교등급제를 입증하는 구체적인 자료가 공개되면서 논란이 확산되자 뒤늦게 일정을 앞당기겠다고 했지만 조사가 제대로 이뤄질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최근 연세대의 '2012학년도 본고사 도입 선언'에 대해서도 대교협은 "제재 권한이 없다"며 사실상 용인 방침을 시사했다. 박종렬 대교협 사무총장은 "대교협 차원의 기본 방향은 있어야 하겠지만 대학 자율화 이후의 문제는 각 대학이 알아서 하는 것이어서 규제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주요 대학들의 독단적 행보는 어느 정도 예견돼 있었다. 대교협은 과거 정부가 했던 것과는 달리 입학전형 원칙을 위반한 대학을 행ㆍ재정적으로 제재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이 없다. 15명의 대학 총장으로 구성된 산하 '대학윤리위원회'가 사회적ㆍ윤리적 책임을 다하지 못한 대학에 대해 '3년 이하의 회원자격 정지', '교과부 통보' 등의 징계를 이사회에 요구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제재 기준이 모호할 뿐더러 내용도 제한돼 있어 실효성을 기대하기 힘든 실정이다.
더 큰 문제는 대학간 자율협의체라는 대교협 특성상 해당 대학이 조사에 비협조적으로 나올 경우 이를 강제할 근거가 없다는 점. 서울 주요 대학들이 이사회와 의사결정 과정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제 식구 감싸기'에 급급할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는 것이다.
김이삭 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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