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불황으로 해운 시장이 침체에 빠지면서 뱃머리를 '무덤'으로 돌리는 화물선들이 늘고 있다. 일감이 없어진 데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호황기를 기다리며 값비싼 유지관리비와 계선(정박)료를 지불하기엔 수지가 맞지 않아 선사들이 선박 해체(폐선)를 택하는 것이다.
5일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등에 따르면 지난해 880만DWT(재화중량톤수)의 유조선과 벌크선이 해체됐다. 2007년 선박 해체량 355만DWT의 2배가 넘는 양이다. 또 올해 해체 예정량은 2007년 해체량의 10배에 가까운 3,210만DWT, 내년엔 약 20배인 6,340만DWT에 달할 전망이다.
특히 해체선의 경배수(輕排水)톤(LDTㆍ선박을 해체하기 위해 지급하는 선가 단위)당 매매가격은 벌크선 270달러, 유조선 285달러(2008년 12월 말 현재)로 2007년 평균치보다 40% 가량 낮은 수준인데도, 선사들은 이를 감수하고 선박 해체에 나서고 있다. 해체 과정에서 나온 고철은 녹여져 건축자재나 배를 만드는 데 재활용된다.
한국선주협회 관계자는 "발틱운임지수(BDI)가 1만포인트를 넘는 등 물동량이 최고조에 달했던 2007년에는 30년 이상 된 노령의 선박들도 일선에서 뛰어야 했지만, 지난해 4분기 이후 실물경기 위축으로 BDI가 1,000포인트 수준으로 내려오는 등 시황이 나빠지자 25년 된 상대적으로 '젊은' 배들도 해체되는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지난해 해체된 화물선 수는 93척이며, 이 중 58척이 12월 한 달간 해체됐다. 특히 국제해사기구(IMO)가 2010년 이후 단일선체 유조선의 운항을 금지한 터라 무덤으로 향하는 선박들의 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단일선체 선박은 원유저장 탱크가 한 겹의 철판으로 된 유조선으로, 2007년 12월 태안 앞바다에서 크레인선과 충돌하는 바람에 1만여톤의 원유를 유출한 홍콩 선적 유조선 허베이 스피리트호가 대표적이다.
경기 침체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선박 유지비를 줄일 필요성이 커진 것도 노후 선박의 폐선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파악된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노후선을 해체하면 운영경비도 줄고 고철값도 받을 수 있다"며 "당분간 노후 선박의 폐선은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 관계자는 "선박 해체는 대형 유조선의 경우 2~3개월은 족히 걸리는 노동집약적 산업으로, 전 세계 선박의 70%가 인도와 방글라데시 등 임금이 싼 나라에서 이루어진다"며 "선박 해체 관련 산업이 득을 볼 일은 없지만, 폐선에 따른 신선박 수요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는 국내 조선업체에 호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업계는 지금처럼 유조선과 벌크선 해체가 늘어나면 해운 경기가 조기에 안정기에 진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정민승 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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